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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Sep 29. 2022

"최선을 다했다"는 말에 대한 생각


모두가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삶의 가치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점을 명확히 하고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은 생각보다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기대보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설명 혹은 변명을 할 때 관용구처럼 쓰이기도 하고, 수능시험이나 국가고시와 같이 시험을 치고 나서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동안 시간이 걸릴 때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주문처럼 쓰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겠다는 비장한 '다짐'으로 최선을 말하기도 한다.


'최선'은 기준점에 따라서도 그 의미가 달라진다. 먼저 '시간'을 기준점으로 생각해보자. '과거의 내'가 해온 것을 기준으로 최선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되고자 하는 '미래의 나'를 기준으로 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기준점도 있다.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을 기준으로 혹은 '내가 속하고자 하는 집단'을 기준으로 잡을 수도 있다. 앞의 기준들과는 다르게 타인을 배제한 오로지 '나'에만 집중한 기준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과거와 현재가 상당히 다르다. 과거의 나는 주로 '변명'의 용도로 최선을 활용했었고, 기준점은 '과거'와 '내가 속한 집단'이었다. 나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최선이었다.


이 점을 깨닫고 나서 나의 최선은 '다짐', '미래의 나', 그리고 '내가 속하고자 하는 집단'을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아직 누군가에게 "이렇게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어"라고 말하기에는 나의 삶이 그 증거로써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제의 나와 비교해보았을 때는 확실히 체감이 되는 최선의 전환이었다.


이를 달리기에 비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100m를 15초에 뛰는 사람이 빠르게 달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겠지만, 그가 1년 전만 하더라도 20초에 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의미의 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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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ohamed Nohass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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