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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ug 10. 2022

아이디어의 가치는 0에 가깝다

 저는 실무 경험은 부족하지만 아이디어는 정말 넘쳐요.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못할 정도로요.


마케팅 모임에서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참여자가 자기소개를 하면서 당당하게 본인 어필까지 곁들였다. 그 참여자의 밝은 분위기와 당당함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20대 때의 내가 생각나서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어느 곳에서"아이디어가 많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신입사원연수에서도 3주간의 연수 막바지에 함께한 동기들과 익명으로 서로의 장단점을 수치화해서 평가했는데, 나의 창의력 점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매우 높았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스스로 아이디어가 많다는 것에 도취되었고 우쭐해지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감 혹은 오만함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입사 초반에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신입사원인 나도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는데 선배들이 "그게 말은 좋은데 되겠어?"라고 물었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안 되겠다는 것을. 나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그 아이디어의 허무맹랑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건축에 빗대어 말해보자면 그 누구도 짓지 못한 역피라드 모양의 집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그것을 구현해보겠다고 나섰지만 그 집은 짓지 '못 한 게' 아니라 짓지 '않았다'는 것을 공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나의 아이디어는 현실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글을 쓰고나서 검색해보니 이런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사진출처: 동아사이언스


그리고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대부분의 일은 아이디어가 얼마나 반짝반짝한지 보다는 초기의 아이디어를 얼마나 반짝반짝하게 구현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생각과 말은 쉽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수준의 일이다. 심지어 생각과 말을 이처럼 단순히 글로 옮기는 행위조차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스타트업이나 발명품을 보고 "나도 저 생각했었는데"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더 나아가 성공시키는 사람은 '누구나'가 아닌 치열하게 노력한 '누군가'이다.


회사를 다니며 나를 돌아보는 경험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는 경험 또한 했었다. 회사에서 근무를 할 때 운이 좋게도 입사지원를 평가하는 일을 잠시 한 적이 있다. 그때 지원서를 보면서 나를 비롯해 다수가 느낀 공통점은 지원서에 '창의력이 좋다', '아이디어가 많다'라고 직접적으로 쓴 사람에 대해 평가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평가자들이 아이디어가 반짝반짝하다고 느낀 지원자들은 오히려 그런 직접적인 말 없이 지원서의 구조나 내용 혹은 경험의 종류로 우리를 납득시킨 사람들이었다. 즉 주장이 아닌 증명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설득당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아이디어의 가치는 0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어떠한 형태로든) 구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p.s. 스스로 아이디어가 많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구현하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함께 고민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나아가서 소소하더라도 그것을 구현해보는 경험까지 해본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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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cott Rodger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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