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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0. 2022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에 대해서
니체가 말한 대로
공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지식인들이 TV에 나와서 위와 같은 식으로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나에게 저런 식의 화법은 단순히 잘난 척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왜 본인 생각을 말하지 않고 타인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나의 글을 여러 개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나도 어렸을 때 안 좋게 보던 지식인들처럼 유명인의 말을 곧잘 인용하고 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이유도 보지 않고 혀를 끌끌 차고 있을 것 같긴 하다)
1. 출처를 밝힐 필요를 느꼈다
최근 음악계에서 표절과 관련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표절의 기준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고 나는 관련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무엇이 옳다 그르다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태다. 다만 명확하게 특정 음악에 영향을 받았고 그것의 일부를 내 음악에 이용하고 싶다면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힙합에서는 기존 음악을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활용하고 싶다면 그것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샘플링을 하는 작법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나는 힙합처럼 글을 쓸 때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공적인 자리에서 말을 할 때도 이러한 출처를 밝히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다양한 모임에 나가다 보면 유명인의 말을 본인의 말인 양 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나는 굳이 그럴 때 그 말이 누구의 말이라고 지적을 하진 않는다. 우연의 일치로 그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말을 할 수도 있고 혹은 의도치 않게 본인이 생각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타인에게 인상적으로 보이기 위한 의도로 출처를 감추어 타인의 말을 본인의 말인 양 하는 것은 꽤나 위험하다. 그것이 습관화가 되면 그런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상업적 강연 혹은 글로 남는 작품에도 고스란히 그 행동이 이어질 테니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다수가 모인 모임에서 말을 할 때도 유명인의 생각과 말을 인용하고 싶다면 그 출처를 최대한 밝히려고 하는 편이다.
2. 언어적 경제성이 있다고 느꼈다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언어의 경제성'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다.
언어 사용에서 경제성 원리는 다음에 나오는 네 가지 원리로 이루어진다.
① 청자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말라.
② 두 정보가 밀접한 관련이 있을 때에는 하나의 표현으로 줄여 말하라.
③ 연속되는 단계의 정보가 밀접한 관련이 있을 때에는 그 단계를 줄여 말하라.
④ 정보가 여러 가지이거나 복잡한 경우에는 간단한 표현으로 말하라.
언어 사용에서의 경제성 원리는 경제 일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즉, 투입된 비용과 산출된 결과물에 의해 결정되는 생산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 동일한 양의 인지적·물리적인 노력을 투입하여 더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거나 혹은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면서도 투입된 인지적·물리적 노력이 감소한 표현이라면, 우리는 그 표현이 경제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경제성의 원리 (Basic 고교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 2006. 11. 5., 구인환) 중 -
쉽게 말하자면 '더 적은 양을 말하면서 더 많은 양을 전달하는데 용이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한 문장이 아닌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에 대한 초기 철학(<논리철학논고>) 전체가 전달되는 것이다. 즉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지면에서 최대한을 전달하고자 할 때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3. 일종의 샤라웃으로 작용한다고 느꼈다
힙합에는 샤라웃이라는 문화가 있다.
샤라웃(Shout-out)
샤라웃은 누군가 혹은 무엇에 대해, 특히 그것의 이름을 언급하며, 짧게 감사를 표하는 행위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혹은 누군가의 업적을 인정하는 식이며 주로 라디오나 생방송 행사나 콘서트 혹은 SNS와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샤라웃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행위다.
- dictionary.com 중 -
* 본인 번역
나는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일종의 샤라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들의 말을 인정하고 또한 그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그래서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그들의 생각을 알았으면 하는 일종의 샤라웃으로 말이다.
경험적으로 느낀 이러한 샤라웃의 긍정적인 효과는 나와 오랜 기간 모임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자주 인용하는 니체와 같은 철학가에 큰 관심을 갖게 되고 그의 작품까지 읽게 된다는 것이다. 힙합의 샤라웃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이다. (힙합에서는 유명 래퍼의 샤라웃을 받은 신인 래퍼는 아주 빠르게 팬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물론 내가 유명 래퍼와 같은 영향력이라는 것은 아니다.)
4. '나'와 '나의 말'을 분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가끔 모임에서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쉽게 말해 주먹 대신 입으로 싸우는 경우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반되는 주장이 이어질 때 그것에 대해 '나의 말'에 대한 반박이라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반박 더 나아가서는 나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다. 즉 '나'와 '나의 말'을 분리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런데 유명인의 말을 인용했는데 반박당할 경우 '나'와 '나의 말'을 분리해서 받아들이기가 좀 더 수월한 것 같다. 그 반박이 '나' 그리고 '나의 말'에 대한 반박이라기보다는 '유명인의 말'에 대한 반박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유명인의 말에 동의를 하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인용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5. 설득력이 높아짐을 느꼈다
이 부분은 길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대부분 느낄 것 같다. 우리 동네 세호가 말한 것은 나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쓰이기 힘들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면 그것은 굉장히 설득력 있는 근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다음과 같은 뉘앙스의 글도 떠돌아다니고 있다.
아무 말이나 쓰고 그것을 유명인의 사진 옆에 붙이면 설득력이 생긴다
이것을 노리고 특정 유명인이 하지 않은 말을 그들이 한 것 마냥 지어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잘못된 명언 중 하나가 앤디 워홀이 말했다고 알려진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득력이 높아짐'은 유명인의 말을 인용할 때의 장점이면서 또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즉 단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유명인의 말을 연관성이 없음에도 아무 때나 인용하거나 혹은 확인되지 않은 말을 인용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유명인의 말을 자주 인용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바로 '타인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혹은 '나의 생각'을 '타인의 생각'으로 오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꽤나 빈번하게 말이다. 더 엄밀하게 생각해보면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은 '나만의 생각'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그렇게 보면 내가 인용하는 유명인들의 말도 사실 그전에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보니 정확한 출처를 말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이 원칙의 불완전성과 그것을 행하는 나의 미흡함은 지속적으로 인정하면서 말이다. 그 이유를 굳이 말해야 한다면 이 글의 취지에 맞게 유명인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가슴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라. 어떤 선택을 하건 당신은 비난받을 테니 말이다
- 엘리너 루스벨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