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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ug 28. 2022

물고기 잡는 법만 알려주면 끝?


한 모임에서 빈곤층을 도와주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이 대화가 어디로 흐를지 예상할 수 있었다. 바로 대다수가 정답같이 여기는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끝날 것을.


나의 예상대로 대화가 진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정답 같은 말이 나왔고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해당 주제는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이 말에 100% 동의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날의 모임 주제와는 살짝 동떨어진 이야기였기에 일단 넘어갔다. 그래서 이렇게 뒤늦게나마 못다 한 말을 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단체에서 일하는 지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내가 직간접적으로 느낀 부분도 그렇지만 정말 어려운 상황에 놓인 빈곤층 대부분 '물고기 잡는 법'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 놓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터널 비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터널 비전(Tunnel Vision)

당신이 극도로 배가 고프다면 음식 말고는 다른 것을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당신이 극도로 가난하다면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것 말고는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목표 혹은 생각에 꽂혀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상태를 터널 비전이라고 부른다.

참조 문헌: npr.org, "Tunnel Vision"


다시 말해 우리가 빈곤층에게 아무리 '고기 잡는 법'을 말해도 그들에게는 '고기'말고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먼저 해야 할 것은 그들이 터널 비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의 고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중 하나가 미국의 '주택 우선 정책'이다.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주택 우선 정책(Housing First: 아무런 조건 없이 노숙자들에게 주택을 먼저 제공)은 치료 우선 정책(Treatment First: 사회적응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한 노숙자들에게만 주택 제공)과 비교했을 때 노숙자를 줄이는 데는 88%, 주거 안정을 도모하는 데는 41%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 주택 우선 정책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노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https://nlihc.org/sites/default/files/Housing-First-Research.pdf 중 -
* 본인 번역


이처럼 사람은 기본적인 '의식주'가 안정되 단기적인 것만 바라보는 '터널 비전'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삶의 목표에 따라 계획적이고 생산적인 생활을 영위해나갈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조금만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덧붙이면 빈곤층에게 긍정적인 '동기부여'까지 할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칠레의 '반쪽의 좋은 집(Half of a Good House)'프로젝트다.


반 쪽의 좋은 집(Half of a Good House). 사진 출처: archdaily.com
빈민 주택 문제에 오랜 관심을 가져온 칠레의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는 한 세대당 만 달러(천만 원) 정도의 예산만 투입할 수 있는 사회 주택의 근본적인 한계에도, 얼마나 많이 지을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집을 지어야 하는지 고민해왔다. 건축가는 주어진 예산으로 건설 가능한 40제곱미터의 공간뿐 아니라 차후에 증축할 수 있는 또 다른 40제곱미터의 빈 공간을 함께 분양하자(half a good house)는 기발한 제안을 한다. 비어 있는 절반을 꼭 지어야 할 의무는 없었으나 자신이 노력만 하면 지금 집보다 두 배로 큰 집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과 목표가 생긴 입주자들은 다른 사회 주택 입주자와는 다르게 변해 갔다.

반쪽 집은 전 세계 많은 건축가와 주택 당국자의 영감을 자극해 가나, 남아공, 태국, 멕시코의 사회 주택에 적용되고 있고, 계속 확산되고 있다.

- 임우진의 <보이지 않는 도시> 중 -


요약하면 누군가를 도우려고 할 때 물고기만 주는 것도 혹은 물고기를 잡는 법만 가르쳐주는 것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터널 비전을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물고기와 함께 동기부여가 되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우리의 선 더 높은 확률로 선한 결과 이어지지 않을 생각한다.


P.S. 물론 근로의욕을 저해하는 수준로 과도하게 무상 제공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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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Photo by Mathieu Le Roux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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