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선생 Nov 11. 2022

세계관의 시대 그다음은?


바야흐로 세계관의 시대다.


에스파의 노래를 100% 즐기려면 광야로 대표되는 SMCU(SM Culture Universe: SM 아티스트 간 연결되어 있는 세계관)를 이해해야 하고, BTS의 뮤직비디오를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역시 BU(BTS Universe)라는 세계관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비단 음악 시장에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SM의 광야와 SSG.com의 컬래버레이션. 사진 출처: SSG.com


<어벤저스>와 같은 마블의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데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마블의 슈퍼히어로 콘텐츠 세계관)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연관된 영화는 물론이고 때로는 TV시리즈 만화까지 봐야 한다.


마블의 MCU. 사진 출처: geekgirlauthority.com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세계관은 공급자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영화 한 편, 음악 한 곡이 아니라 수십 개의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게 해 주고, 한 번 빠진 고객은 오랫동안 빠져나갈 수 없는 락인 효과(Lock-in Effect)까지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기업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콘텐츠 기업이 아닌 다양한 업종의 회사들까지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잘 알려진 사례가 자사의 제품으로 세계관을 형성한 빙그레의 '빙그레우스'이다.


빙그레우스.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binggraekorea


공급자의 입장은 이해하겠는데 소비자는 왜 세계관에 반응을 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그것이 더 큰 '몰입감'을 주기 때문이다.


세계관은 다양한 층위의 팬심(Fan心)을 형성한다. 개별 콘텐츠를 이해하는 팬, 세계관 전체를 아울러서 이해하는 팬, 그리고 세계관을 기반으로 존재하지 않는 콘텐츠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팬과 같이 말이다. 그래서 극도로 몰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무한대의 깊이감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팬이 원하면 얼마든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2차 창작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사실 세계관이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80년대에는 김용의 <영웅문>과 같은 '무협소설'이 800만 부 이상 팔리고, 90년대에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이 2억 부 넘게 팔리며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것은 다 매력적인 세계관 덕분이다. 그리고 이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세계관은 근대의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제 세계관을 넘어선 무언가를 고민할 되었다. 일본의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가 말한 '데이터베이스관'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세계관은 근대의 개념이다. 큰 이야기를 기반으로 작은 이야기를 수없이 창출하는 근대의 이야기인 것이다. 국민가요, 국민드라마, 국민영화와 같은 큰 이야기가 사라져 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러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2차 창작은 그 수명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이제는 세계관이 아닌 데이터베이스관을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세계관을 근간으로 펼쳐나가는 애니메이션으로 <건담>이 있고, 그와는 다르게 데이터베이스관으로 이야기를 펼친 애니메이션으로 <에반겔리온>이 있다.

세계관을 근간으로 하는 유니버스와는 다르게, 데이터베이스관을 근간으로 하게 되면 관찰자의 시점과 욕망에 따라 멀티버스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건담> 팬들은 건담의 세계를 정밀 조사하는 데 욕망을 쏟고 있다. 즉 거기에는 가공의 커다란 이야기에 대한 정열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나타난 <에반겔리온>의 팬들, 특히 젊은 세대는 그 붐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조차 에반겔리온의 세계 전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지 않았단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들은 처음부터 2차 창작적인 과도한 읽어내기나 캐릭터 모에의 대상으로서 캐릭터의 디자인이나 설정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작품에서 가이낙스가 제공한 것은 TV 시리즈를 입구로 한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시청자 누구나 마음대로 감정 이입하고 저마다 나름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 없는 정보의 집합체였던 셈이다.

<에반겔리온>의 소비자 대부분은 완성된 애니메이션을 작품으로 감상하는 (종래의 소비) 것도, <건담>처럼 그 배후에 감춰진 세계관을 소비하는(이야기 소비) 것도 아니라 처음부터 정보=비이야기만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은미 옮김, 문학동네, 2012) 중 -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에게 데이터베이스관은 생소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나 또한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내가 이해한 바를 기반으로 비유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세계관이 완성된 장난감들의 집합이라면, 데이터베이스관은 레고 블록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가 탄탄한 스토리로 '수동적 몰입감'을 주는데 집중한다면, 후자는 조합과 응용의 다양성을 통해 '능동적 몰입감'을 극대화하는데 집중한다. 다르게 말해 세계관은 '닫힌 결말'내에서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면, 데이터베이스관은 '열린 결말'이기 때문에 무한한 창조를 이끌어낸다.


아직 데이터베이스관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구체적인 콘텐츠도 적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응용은커녕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힘들다. 다만 세계관이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파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싶은 창조적 파괴자에게 '데이터베이스관'은 상당히 좋은 망치가 될 것이다.


누가 먼저 이 강력한 망치를 휘두를 수 있을까?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Photo by NASA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구글도 실패한 (돈 안 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