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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Sep 01. 2022

여행은 로컬처럼 살아보는 거야!?


고향이 제주도라고 말하면 99%의 확률로 크게 세 가지의 반응이 나온다. (사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으니 지금까지는 100%다)


1. 우와 좋겠다

2. 저도 제주도가 고향이에요

3. 제주도 맛집 좀 알려주세요


이 세 가지 반응 중에서 3번 반응이 가장 난감하다.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주기적으로 고향을 방문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서울에서 보냈고, 또한 친척들에게 맛집을 물어봐도 '써브웨이' '버거킹' 등과 같이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를 자주 간다고 말을 하니 말이다. 사실 제주도 사람들보다 제주도에 자주 놀러 가는 육지 사람들이 훨씬 더 다양한 맛집과 카페를 알고 있다. 이것은 거의 팩트에 가깝다고 본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몇몇 사람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치 내가 귀찮아서 혹은 본인을 싫어해서 안 알려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굳이 이러한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 '로컬들이 가는지는 모르나 로컬로 불리는 내가 알려주는 제주도 핫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추천을 하곤 한다. (로컬은 해당 지역에 오랫동안 산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는데 이 글에서 로컬이라는 단어를 지역 주민과 혼용해서 사용하겠다)


물론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관광객들만 가는 관광명소가 아닌 진짜 지역 주민들이 좋아하고 자주 방문하는 곳을 둘러보는 로컬처럼 살아보는 형태의 여행이 각광받고 있으니 말이다. (마케터의 입장에서 보면 에어비앤비는 이러한 고객들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슬로건에 반영했었다)



사진 출처: 유튜브 '에어비앤비'



그런데 이렇게 로컬럼 살아보는 것이 여행의 선택지를 늘려주는 또 하나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기준이 되면서 여행의 다채로운 묘미를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역 주민도 그리고 다른 관광객도 잘 모르는 나만의 장소와 맛집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 않은가? 다소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제주도를 '2차 창작' 해보는 재미 말이다. 제주도라는 오리지널 작품을 나만의 시각과 해석으로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글이 아닌 여행을 통해서.


그래서 나는 "그곳도 안가보고 제주도 가봤다는 말 하지 말아라"와 같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일본의 비평가 아즈마 히로키도 본인의 책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인터넷상에는 '원작충'이라는 흥미로운 속어가 있다. 작품의 영상화에서 원작 세계관에 대한 충실성을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애니메이션은 경우가 조금 다르지만 소설이나 만화를 실사 드라마 또는 실사 영화로 만들 때 얼마간 2차 창작적인, 즉 원작을 변경하는 부분이 생긴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스토리 결말이 바뀐다. 원작충이라 불리는 사람은 이것이 '원작과 다르다'며 불평하는 것이다.

이런 원작충의 이의 제기는 관광객이 품는 상상에 대해 관광지 주민이 갖는 위화감과 구조가 같다. 예를 들어 일본에 짧게 체류한 외국인이 '게이샤', '후지산', '아키하바라'에만 관심을 갖고 사진에 담아 돌아간다고 하자. 일본에 사는 사람이 보기에 그의 사진은 다양한 현실 중 자신이 좋아하는 이미지만을 오려 낸, 이를테면 '일본의 2차 창작'에 불과하다. 이에 일본 거주자는 '일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며 비웃는다.

- 아즈마 히로키의 <관광객의 철학> 중 -


개인적으로 벌레를 의미하는 '충(蟲)'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아즈마 히로키의 글에 따르면 로컬들이 가는 곳을 가야 진정한 여행이라는 것도 일종의 원작충에 가깝다. 여행지의 모습을 하나의 기준으로 단일화하려는 일종의 강박적인 시도가 느껴지니 말이다.


나는 여행객의 숫자만큼 다양한 모습의 제주도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로컬 맛집도 좋고, 관광객만 가는 맛집도 좋고 혹은 터무니없는 음식점과 장소도 괜찮다. 나만의 발걸음으로 나만의 제주도를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멋지지 않을까?



P.S. 그나저나 요새 제주도에서 관광객들에게 핫한 맛집과 카페는 어딘가요? ㅎㅎ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a



Photo by Jieun Li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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