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선생 Oct 02. 2022

옳고 그름 그리고 좋고 싫음


최근에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만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을 진행했다.


또래들과의 대화는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시간의 교집합이 크다 보니 추억의 교집합 또한 커서 대화에 과거 이야기 한 스푼만 넣어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빠르게 친밀해진다. 그날도 모임의 분위기는 마치 동창회를 연상케 하는 친밀함과 반가움으로 가득했다. 만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은 사람들이 말이다.


정해진 종료시간을 30분 훌쩍 넘길 정도로 즐거웠던 모임을 끝내고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한 참여자가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공동 모임장과 함께 셋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모임에서 유쾌하게 이야기하던 그분은 소수의 인원만 남아서 마음이 편해졌는지 속에 담아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주된 이야기는 사회의 불합리함에 대한 것이었다. "옳지 않은 것을 보고 그냥 참을 수가 없다"는 말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동의를 구하곤 했다. 그러나 나와 공동모임장은 쉽게 동의하기 힘들었다. 그분이 객관적인 '옳고 그름'이라 주장하는 바는 주관적인 '좋고 싫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는 쉽게 반론을 제기하기도 그렇다고 동의하기도 힘들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옳고 그름'을 100%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문제는 자세히 뜯어보면 '좋고 싫음'에 가깝다. 개인적인 '호불호'는 쉽게 '선악'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을 정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를 파괴하는 것 또한 '옳고 그름'이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옳고 그름'은 시공간에 한정된 사회적 합의이지, 시공간을 초월한 진리일 수 없다. 이것을 절대시 할 경우 사회를 파괴하는 거대한 폭력이 탄생한다. 역사상 대부분의 전쟁은 그럴싸한 명분이 있었고, 명분은 '옳음'의 증거로 쓰였다. 즉 상당수의 비극적인 사건과 폭력은 "우리는 옳고 그들은 그르다"라는 절대적인 신념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현재도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는 끊임없이 갱신된다."한 명을 죽이면 악당이 되지만, 수백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같은 살인도 규모와 맥락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대의 가치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는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맹자는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잠재우려고 했다. 바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인의예지'를 통해서. 인의예지에서 '지'는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맹자는 이를 통해 누구나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이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맹자의 스승으로 볼 수 있는 공자도 유교 최고의 가치인 '인'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았다. 공자는 '인'을 고정된 가치가 아닌 상황에 맞게 변하는 가치로 정의했고 제자들에게 그러한 맥락으로 가르쳤다.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끊임없이 변하듯 '인'도 그렇게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도 인(人)이고 유교의 최고 가치도 인(仁)인가 싶다)


공자가 말한 '인'처럼 '옳고 그름'도 고정된 것이 아닌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세상 모든 것을 1% ~ 99%의 범주 내에서만 생각하고 말을 하려고 한다. 나의 옳음이 그름이 될 수 있고 상대의 그름이 옳음이 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기기 위해 0%와 100%를 버리면서 말이다.


그래서 현재 내가 서있는 위치는 '옳고 그름'이 아닌 '좋고 싫음'이다.



P.S. 이런 나의 생각을 '극단적 상대주의'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굳이 분류하자면 도구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주의(-ism)를 주의하는 입장이라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내키지는 않지만.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Photo by Andrea De Santis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객관적인 '좋아요'로 판단하는 내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