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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Sep 06. 2022

영어 네이밍에서 문법은 얼마나 중요할까?

 본 글은 클라이언트를 특정하지 않기 위해 다소 각색하였습니다.


한 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매우 급한 상황처럼 보였다.


회장님의 지시로 내부 조직을 별도의 회사로 만들어야 해서 모든 것을 다 준비했는데 딱 하나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회사의 이름었다.


회장님 보고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 최초의 이름 없는 회사의 탄생(?)을 보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 우리는 일단 빠르게 대면 미팅을 하기로 했다.


미팅 장소에 도착하니 담당 팀장님과 팀원 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네이밍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묻고, 클라이언트 쪽에서는 네이밍을 비롯하여 마케팅과 관련한 질문을 했다. 탁구 의 탁구공처럼 질문과 대답이 빠르게 오가는 와중에 개략적인 방향성을 잡기 위해 내용을 정리하려던 순간 한 팀원 분이 비장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영어의 어원은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섞이지 않아야 합니다. 반드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회사라 이름의 조건 중 하나가 '영어'여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해가 되었지만,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섞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그분은 "그것이 문법상 맞기 때문이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마케터이기 전에 어학 전공자로서 이 부분에 대해서 할 말은 많았지만 본질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일단 말을 아꼈다. 빠르게 내용을 정리하고 그날의 미팅을 마쳤다.


자칭 전문가들이 "언어는 이래야만 한다"는 특이한 이론들을 맘대로 만들곤 했는데, 이 이론들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언어 사용) 경향을 방탕함으로 보는 청교도적인 인식이 깔려있었다.

이러한 이론 중 하나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절대 결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Automobile(자동차)은 Autokinetikon으로 쓰거나 Ipsomobile이라고 써야만 한다.

- 스티븐 핑커의 <The Sense of Style> 중 -
* 본인 번역 및 일부 편집
* Automobile에서 auto는 그리스어 autos에서, mobile은 라틴어 mobilis에서 비롯되었다

 


설령 담당자의 말대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결합하는 것이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더라도 그것이 네이밍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네이밍은 '문법' 그 자체를 고려하기보다는 고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서 문제가 없는지를 체크하는 수단으로써 '문법'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 알아보기 위해 기업의 메시지가 어떻게 고객에게 전달이 되는지 필립 코틀러의 '커뮤니케이션 모'의 개념을 빌려 설명해보겠다.



1. 기업(Sender)의 생각을 언어, 소리, 이미지 등으로 만든다(Encoding)

2. 이렇게 구체화한 요소들을 조합한 메시지(Message)를 TV나 유튜브 등과 같은 매체(Media)를 통해 전달한다

3. 고객(Receiver)은 메시지를 해석(Decoding)한다

4. 고객은 해석을 바탕으로 특정한 반응(Response)을 고 더 나아가서 기업에게 피드백(Feedback)을 한다

5. 고객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잡음(Noise)으로 인해 기업이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르게 메시지를 이해하기도 한다



위 과정에서 잘못된 문법으로 인해 고객이 메시지를 해석(Decoding)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생기거나 혹은 잡음(Noise)이 발생한다면 이는 당연히 고쳐야 한다. 하지만 잘못된 문법으로 인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이 없거나 혹은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된다면 문법은 우선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애플과 소니의 예를 들어 보겠다. (애플은 네이밍이라기보다는 카피라이팅이긴 하지만)


애플은 1997년 광고를 통해 "Think Different"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사진 출처: https://medium.com/ad-discovery-and-creativity-lab/think-different-b566c2e6117f


이 슬로건은 문법학자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해당 슬로건은 "Think Differently"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화 함께. 그러나 이런 엄밀한 문법에서 벗어난 표현으로 인해 애플이 말하고자 했던 바인 'Different' 의미가 더 강조될 수 있었고, 소비자들도 익숙하지 않은 문장에 한 번 더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대성공이었다. (문법적으로 따지고 봐도 복잡하긴 하지만 think를 연결 동사, different를 부사로 보면 허용 가능한 수준이지 않 싶다)


심지어 콩글리시 같은 네이밍으로 성공한 경우도 있다. 바로 소니의 워크맨이다.


사진 출처: superbrandsnews.com
워크맨은 이른바 일본판 콩글리쉬였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밀항자를 뜻하는 '스토어웨이', 미국에서는 '사운드 어바웃'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현지 직원들로서는 워크맨이라는 단어가 귀에 익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리타 씨는 "워크맨은 영어가 아니라 소니어"라며 세계 공통의 상품명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CBS소니에 입사한 지 이 년 뒤, 옥스퍼드 영영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에 '워크맨'이라는 단어가 더해졌다.

- 히라이 가즈오의 <소니 턴어라운드> 중 -


다시 한번 말하자면 네이밍에서 핵심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문법적으로 옳은가 옳지 않은가'는 핵심을 뒷받침하는 보조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의 표현을 빌려 마무리를 해볼까 한다.


문법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거들뿐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Photo by Ivan Shil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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