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선생 Sep 11. 2022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에 대해서


대학교를 다닐 때쯤으로 기억한다. 꽤나 풍족하게 살던(?)분이 나에게 너무나도 뻔하면서 흔하디 흔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란 말을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에게 이 말을 하는 분은 고생은커녕 너무나도 안락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청소년들에게 하는 "담배는 건강에 해로우니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조언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가치를 어렸을 때부터 주입받았던 세대인지라 반론을 제기하기보다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꽤나 흘렀고 나도 꼰대에 속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보니 그분의 말을 어느 정도 나의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성숙의 증명인지 꼰대의 증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1. 고생 총량의 법칙


명리학(흔히 말하는 사주팔자)을 공부하면서 순탄한 인생과 순탄하지 않은 인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명리학과 같은 운명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상 이러한 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어려움과 고생을 겪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순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조차 본인의 삶이 힘들다고 느다.


그런데 이러한 고생은 삶에서 일종의 총량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어렸을 때 고생하지 않은 사람은 중장년기에 조금 더 고생을 하게 되고,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인생 후반기에 덜 고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같은 고생을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인생 초반의 고생은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회복의 여지가 인생 후반기보다는 많다.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인 예를 들어보면 20대 때 망한 사람은 체력과 의지를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확률이 높지만 60대 때 망한 사람은 체력과 의지뿐만 아니라 챙겨야 할 사람들도 더 많기 때문에 회생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결국 고생을 해야만 한다면 젊을 때 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나아 보였다. 


2. 고생이라는 자양분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시기를 꼽자면 아마도 공군어학장교 시절이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가장 고생한 시기도. (누군가가 보기엔 시시한 고생일 수도 있다)


방송에 출연한 공군어학장교 후배님들. 사진 출처: MBC


훈련소에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광대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애매한 기간에 부상을 당했기에 의병전역(복무기간 중 질병으로 복무기간을 마치지 못하고 하는 전역)에는 해당하지 않고 다시 입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수술 및 요양을 하고 6개월 후에 다시 입대하게 되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에서 군에서 훈련을 받다 보니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고통의 순간이었다. 심지어 상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인 나에게 집단으로 묶여 생활해야만 하는 3개월은 30년처럼 느껴지는 긴 시간이었다. (장교의 훈련기간은 사병보다 2배 더 길다)


3개월의 훈련을 마치고 가까스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서 나는 곧장 1달간의 어학장교 특기 훈련을 받아야 했는데, 늑대를 피했더니 호랑이를 만난 격이었다.


어학장교 훈련은 단순히 육체적으로만 힘든 것이 아니라 하루에 2시간 남짓을 자면서 공부해야만 가능한 양의 지식을 단기간에 습득해야만 하는 지적/육체적 스파르타 훈련이었다. "공부 안 하고 버티면 되지 않느냐?"라고 물어보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내가 시험을 못 보면 동기 전체가 기합을 받는 연대책임 구조였기 때문이다. 즉 내가 시험을 망치면 10여 명의 동기들의 저주 어린 눈초리와 함께 기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하는 게 오히려 나을 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대부분의 동기들이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의 명문대를 나왔거나 어렸을 때부터 영어권 국가에서 살다가 와서 영어와 한국어가 모두 네이티브 수준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영어가 네이티브 수준까지는 아니었어서 그들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했다. 마누군가가 나를 10여 명의 다른 사람들과 바다에 빠뜨렸는데, 나만 수영을 못하고 나만 구명조끼가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느낌이었다. 하루하루 숨쉬기에 벅찬 나날이었다.


그러나 고장 난 것 같았던 국방부의 시계도 째깍째깍 움직였고 지옥 같던 1달간의 어학장교 특기 훈련도 끝이 났다.


그리고 10여 년이 흘러서 그때를 돌이켜 보니 그때의 고생과 고통으로 굉장히 성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이후로 삶의 난도 자체가 낮아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때의 고생이 없었다면 이후에 내가 마주한 수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싶을 정도다.



물론 정치인들이 청년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 고생이다"라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들은 청년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자신들의 꿈을 꾸고 펼칠 수 있 여건을 만 책임이 있으니 말이다. 정치인들은 그것을 하라고 힌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자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 고생이다"라는 말을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고생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고생을 이겨내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위안이 되는 따뜻한 말을 해주는 멋진 사람들도 나의 고생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하니까 말이다.



<같이 읽으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Photo by Adli Wahid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정답을 원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