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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Nov 24. 2022

꿈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얼떨결에 취직을 했다.


공군에서 어학장교로 복무할 때 천안함 피격 사건이 터졌다. 나라 뒤흔들릴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군내부의 분위기는 침통함과 동시에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중대한 사건인만큼 해군뿐 아니라 필요한 부분에 있어 다른 군 인력도 투입이 되었는데, 공군 어학장교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내가 복무할 당시만 해도 국방부 장관 통역은 물론이고 대통령 군사 통역도 공군 어학장교가 전담했기에 천안함의 외신 브리핑도 공군 어학장교가 담당을 하게 되었다. 국방부에 소속되어 있던 선배와 동기들이 외신 브리핑을 위한 자료 번역을 했고, 합동조사단 발표 때는 공군 어학장교의 에이스였던 조군호 중위가 통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진 출처: 네이버 뉴스


그는 어학장교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엘리트였다.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대학교와 견줄 수 있는 예일대학교 출신인 것을 차치하고라도, 그의 통역실력은 당시 어학장교 중에서도 최고라는 것이 대부분의 평이었다. 그리고 그의 실력은 합동조사단 발표 때 더욱 빛을 발했다. 전 세계 언론사는 물론이고 국내 유수의 기업들도 조군호 중위에 주목했는데 그중 한 기업이 발 빠르게 채용에 나섰다. 바로 삼성그룹이었다.


삼성그룹은 공군어학장교 출신을 위한 특채 전형을 신설했고, 나도 이 전형을 통해 뽑히게 되었다. 사실 뽑혔다는 말보다는 삼성그룹의 제안을 수락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다른 공채 합격자들에 비해 너무나도 쉽게 입사를 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별생각 없이 입사를 하게 된 것이다. 부족한 나에게 큰 운이 따랐다.


이렇게 얼떨결에 입사를 해서인지 그룹 교육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와 달리 대부분의 합격자들은 꽤나 벅차고 힘든 교육 일정에 최선을 다해 임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은 삼성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미래에 대한 꿈으로 반짝였다. 반면 특별한 꿈도 열정도 없었던 동태 눈의 나는 교육 기간 내내 여기에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에 함몰되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교육은 의미가 없게 느껴지고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힘들 뿐이었다. 그러다 한 임원의 강의를 듣고 생각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 바로 최치훈 삼성카드 사장의 강의였다.  


저는 딱히 꿈이 없었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고, 어느날 눈떠보니 삼성카드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꿈에 대한 강박을 갖지 마세요.





삼성그룹의 사장이 꿈이 없었다니.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자 위로가 되는 사실이었다. 나도 그가 말한 대로 꿈의 빈자리에 '매일매일 최선'을 채워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가짐이 삼성이라는 기업에서 꿈 없이도 5년을 나름 괜찮게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시간이 꽤 흐른 후에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예능계에 사장님이 있다면 1순위로 꼽힐 인물인 유재석이었다.


사진 출처: 유튜브 'TVN D ENT'


꿈과 목표를 100% 동일한 것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유재석이 한 말도 최치훈 사장이 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미래에 대한 그림이 들어갈 자리에 현재의 최선을 넣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장래 희망'과 '꿈'에 대한 답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어렸을 때 읽는 위인전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원대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모습을 보인다. 위인이면 응당 그래야만 하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꿈'을 갖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삼성에 입사해서 느낀 감정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단 한 가지의 정답만이 있는 시험지가 아니다. 오히려 복수정답이 허용되고 때로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답이 변하는 열려있는 문제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꿈이 없다고 해서 불안해하거나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꿈을 이루는 것도 멋지지만, 매일매일 최선을 다한 것의 결과가 꿈인 것도 멋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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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lexander Gr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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