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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Nov 25. 2022

주 4일제가 되면 아마도...


나는 주 4일제를 원한다. 주 3일제라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주 4일제가 되더라도 내가 일하는 시간은 크게 줄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꽤 늘어날 것 같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4일제를 반기는 이유는 '일하는 시간이 줄어서'가 아니라 '일의 자유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근무 방식을 근로계약과 도급계약(프리랜서)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자. 근로계약은 주 5일 근무와 같이 시간에 묶이는 '종속적'인 측면이 강하고, 도급계약은 약속한 결과만 완수하면 되는 것과 같이 '독립적'인 측면이 강하다. 다시 말해 근로계약은 능력이 아무리 좋더라도 시간이 회사에 묶이지만, 도급계약은 능력에 따라 남들이 100시간 걸릴 일을 10시간 만에 해내고 남는 시간을 다른 일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주 4일제가 된다는 것은 모든 근로자에게 24시간을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고, 위에서 말한 근로계약의 종속적 측면은 줄어들고, 도급계약의 독립적 측면이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즉 개인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벌 수 있는 돈도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양극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재택근무도 비슷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양극화뿐만 아니라 주 4일제는 특정 계층에는 막심한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  프랑스의 주 35시간 제도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프랑스가 2000년에 도입한 주 35시간제는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접근법(one size fits all approach)은 잘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병원과 같은 업종의 근로자들은 이 제도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직원 부족과 고된 업무강도와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 소외계층은 이러한 변화로 보수가 줄어드는 등 가장 형편이 나빠졌다. 프랑스의 주 35시간제는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불완전할 때 어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 Jake Shepherd, "Without careful design, a four-day work week could make inequality worse", Independent, 20210715 중 -
* 본인 번역



프랑스의 사례에 볼 수 있듯이 주 4일제 이후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물가 또한 상승할 확률이 높다. 다른 변수가 있지 않는 한 주 4일 노동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양은 주 5일보다 적기 때문에 공급은 줄어드는데, 사람들은 늘어난 여가 시간만큼 소비를 더 해서 수요는 늘어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득이 줄어듬과 동시에 물가 또한 높아져서 줄어든 소득으로 살 수 있는 것도 기존보다 줄어드는 것이다. 명목소득(눈에 보이는 소득) 감소량보다 실질소득(실제로 체감하는 소득)의 감소량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여가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개인 간 능력과 환경에 따라 더 큰 부의 차이가 발생할 것이다. 누군가는 집에서 쉴 때 다른 누군가는 더 많은 일을 할 것이고, 또한 '시간'이 아닌 '결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같은 시간을 일해도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속속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해보자면 주 4일제가 시행되면 대체적으로 소득이 줄어듬과 동시에 물가는 상승하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소득 격차는 더욱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주 4일제를 무조건적으로 환영하기보다는 이러한 변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4일제를 원한다. 하루 더 늘어난 휴일만큼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에 정책을 수립하는 입장이 된다면 쉽게 주 4일제를 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말한 것은 모두 틀린 예상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조건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엄청난 생산효율을 달성할 수도 있고, 촘촘한 정책 설계로 주 4일제의 단점을 최소화할 수도 있고, 또한 국제정세 및 시대정신의 변화로 사람들의 소비도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의 목적은 주 4일제를 무조건적으로 좋은 선(善)으로 순진하게 바라보기보다는, 다양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칼로 보자는 데 있다. 그래서 다분히 비판적으로 써보았다.


시대의 흐름은 주 4일제로 향하는 것 같다. 그럼 이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 이에 충분히 준비가 되었는가일 것이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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