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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Oct 25. 2022

예술, 쇼미더머니, 이영지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예술 작품이란 영원의 관점으로 바라본 대상이다(<전쟁 일기>, 읻다, 2016)"라고 말했다.


비트겐슈타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철학자, 예술가, 비평가 등이 저마다의 관점으로 예술을 정의했다. 그리고 대중도 예술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다. 혹은 예술을 정의하는 자신만의 언어가.


그런데 예술을 정의할 때 다수가 간과하는 것은 '예술가의 시선'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술을 그저 '완성된 무언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선'으로만 정의 내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르조 아감벤이 니체의 말을 통해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니체는 언어로 서술되는 예술의 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미학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다름 아닌 미학(aisthesis)으로부터, 관람자의 느낌으로부터 정화시켜 예술을 다름 아닌 예술의 창조자, 즉 예술 작품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의 전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 조르조 아감벤의 <내용 없는 인간>(자음과 모음, 2017) 중 -


그렇다면 예술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예술이란 무엇일까?


최근 <쇼미더머니 11>을 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래퍼 이영지의 말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힙합을 예술 그리고 래퍼를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MNET 쇼미더머니 11 포스터.


<쇼미더머니>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다(1위는 물론 <전국노래자랑>이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을 통해 비와이, 원슈타인, 우원재와 같은 수많은 힙합 스타가 탄생을 했고, 넉살과 송민호와 같이 힙합을 넘어 전국구 방송인으로서 거듭난 사람도 생겼다. 지원자 각자의 이유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겠지만 공통분모를 뽑자면 위에서 언급한 스타처럼 되고 싶은 마음, 즉 '대중에게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얻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이미 <고등래퍼3>에서 우승을 해서 래퍼로서 어느 정도 증명을 했으며,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은 이영지가 출연한 것이다.


그녀는 <쇼미더머니 9>의 스윙스처럼 그 어떤 참가자보다 잃을게 많은 사람이다. 이미 이영지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와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그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이제는 래퍼가 아닌 그저 웃긴 예능인'이라는 편견에 스스로 확인 도장을 찍어주게 되는 꼴이기 때문이다. 잘해야 본전인 상황인 것이다.


그녀도 이와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고, 그로 인한 중압감 속에서 출연했음을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그리고 이 인터뷰 내용에 '예술가가 바라보는 예술'이 스며 있다.


MNET <쇼미더머니 11> 중



이번 시즌을 통해서 제가 진짜 랩에 불같이 뜨거워질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해봤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상, 그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녀의 첫 번째 말은 '내가 누구인가(who am I)?"에 대한 이야기다. 예술가는 예술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피카소가 말한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말에서 훔친다는 것은 결국 기존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인데, 자기를 모르고서는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술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예술가로부터 탄생할 수 있다.


그다음 말에서는 예술을 바라보는 '관람자'를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은 특히나 대중예술은 관람자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관람자가 창작자의 행위와 결과물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예술이 될 수 없다. "당신이 농담을 했는데 아무도 웃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문장일 뿐이다(매슈 바전, <기빙파워>, 윌북, 2022)"라는 말처럼 예술도 그것에 대한 반응에 따라 예술이 되기도 하고 무의미한 행위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그녀는 관람자가 예술이라고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말에는 숨은 의미가 하나 더 있다. 그들의 기대라고 했을 때 '그들'에는 창작자 본인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창작자인 동시에 본인이 창작한 결과물을 가장 먼저 바라보는 관람자이기 때문이다. 즉 대중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기대하는 것 이상을 보여주어야만 예술로서 성립할 수 있음을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1차 예선 후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함을 밝히고 있다)


그녀의 말을 종합해보면 예술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예술은 "본인을 알아가는 과정을 본인과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경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이를 위해 마지막 랩 가사처럼 끊임없이 오르고 있다.


Man I'm still climbing Look
나는 여전히 오르고 있어. 잘 봐!



P.S. 강한 압력이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듯 그녀도 중압감을 이겨내고 다이아몬드가 되길 팬으로서 기원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utmGNJlEXs&t=18s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Photo by aiden marpl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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