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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Nov 10. 2022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사람의 비밀?


수많은 사람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린 사람은 뉴턴이 유일다. (이야기의 진위여부는 이 글에서 따지지 않겠다)


이처럼 같은 것을 보아도 누군가는 별생각 없이 지나치고 다른 누군가는 역사를 바꿀 생각을 떠올린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질까? 이를 잘 보여주는 테스트가 있다. 바로 로르샤흐 테스트다.


로르샤흐 테스트(Rorschach Test)

로르샤흐검사는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인 헤르만 로르샤흐가 개발하여 로르샤흐검사라고 불립니다. 검사는 먼저 종이 위에 잉크 방울을 떨어뜨리고 종이를 반으로 접은 후 생긴 모양 10매를 피험자에게 보여준 뒤, 그림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무슨 생각이 나는지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피험자의 심리 상태를 파악합니다. 종이에 그려진 잉크반점이 모호한 자극으로 작용하여 개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성격의 여러 측면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검사법입니다.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지각반응을 분석하여 개인의 인격 성향을 추론하는 진단검사로, 불안·긴장·갈등을 측정하여 주로 개인의 성격구조를 밝히는데 이용됩니다.

- 서울아산병원 검사/시술/수술정보 중 -


사진 출처: BBC


누군가는 위 잉크 반점을 보고 '강아지 두 마리'를 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곤충'을 떠올릴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동일한 물체 혹은 현상을 보더라도 제각기 다른 인상을 받고 생각을 하게 된다. 즉 '경험'이 바로 '생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사람'은 이 무언가가 남다른 사람이다. 이것을 '새로운 정보를 조직하고 통합하는 인지 프레임' 스키마(Schema)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 더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바로 '지식의 총량'과 '질문의 총량'으로.



1. 지식의 총량


대학교 때 돈을 모아서 파리로 배낭여행을 갔다. 그 당시 나에게 파리는 에펠탑이 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볼 수 있으며, 몽마르뜨 언덕에 가면 그림을 그려주는 화가가 있는 유럽의 유명 도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처럼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나에게 파리에서의 모든 경험은 '이국적'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끝이 나버렸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이 꽤 있으리라 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지식의 총량에 따라 경험이 생각으로 변하는 총량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한옥을 보고 그저 우리나라 전통양식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치는 반면에 건축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본다. 유현준 교수가 말했듯 땅의 습기로부터 나무 구조의 집을 지키기 위해서 지면에서 기둥으로 수십 센티미터를 띄움과 동시에 서까래와 지붕이 비에 젖지 않고 마를 수 있게 태양의 입사각을 고려하여 곡선으로 만든 처마로 구성된 한옥과 그것을 만든 선조들의 지혜를 말이다. 미학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은 한옥의 색감을 보면서 집과 자연을 연결하려는 선조들의 철학을 볼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한옥도 지식의 총량에 따라 그에 대한 생각의 총량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2. 질문의 총량


하지만 지식의 총량만으로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사람'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누구보다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한 사람인데 새롭거나 다양한 생각을 하기보다는 천편일률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질문의 총량'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주입식 교육'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나 나는 주입식 교육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일단 위에서 말한 '지식의 총량'이 어느 정도 있어야 그것을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일단 머릿속에 기본적인 지식을 최대한 많이 집어넣어야 한다. 다만 지식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서만 달리다 보면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위에서 말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경험'과 '생각'사이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깔끔한 거울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불교나 도교에서 말하는 거울과는 다른 의미다).


그래서 '지식의 총량'만큼이나 '질문의 총량'도 중요하다. 어떠한 정보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왜?' '어떻게?'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나 알고리즘 기술의 발달로 본인이 선호하는 정보 안에 갇혀 버리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가 만연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질문의 총량을 늘려야 한다.


이렇게 질문을 하다 보면 같은 정보를 보더라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게 된다.



정리를 해보자면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사람의 비밀'은 '지식의 총량'과 '질문의 총량'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 통계에 근거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여러분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떠올려보면 매우 높은 확률로 이 두 가지가 높은 사람임을 알게 될 것이다.


기존에 찍은 점이 많은 사람은 새로운 점을 찍었을 때 더 다양한 종류의 도형을 만들 수 있고, 남들이 잘 연결하지 않는 점들을 연결하는 사람은 더 새로운 도형을 만들 수 있다. 전자는 '지식의 총량'을 그리고 후자는 '질문의 총량'을 의미한다. 이 둘의 조합이 말 그대로 '더 다양하고' '더 새로운' 생각을 만든다.


좋은 글쓰기의 방법론으로 알려진 구양수의 '삼다론(三多論: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피드백 고 적용해라)'도 결국 '지식의 총량'과 '질문의 총량'을 늘리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틀을 강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다 같이 공부하고 질문해보자.



P.S. 타고난 부분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이 부분은 안다고 어쩔 수 있는 부분은 아니어서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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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rendan Churc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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