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교보문고가 있다. 1년에 300권 이상의 책을 구입하는 나 같은 책(구입) 중독자에게는 희비가 공존하는 사실이다. 마음만 먹으면 매일 서점에 놀러 갈 수 있다는 기쁜 사실과, 갈 때마다 충동구매를 하게 되어 지갑이 가벼워진다는 슬픈 사실을 매우 잦은 빈도로 경험하고 있다.
아무튼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거기에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교보문고의 창립자인 신용호 회장이 생전에 했던 말이다.
사진 출처: 본인
지나칠 때마다 문구에 시선이 꽂히곤 한다. 문학적으로 보아도 울림이 있지만 마케터의 눈으로 보아도 굉장히 잘 만든 문구다. 속되게 말하면 잘 팔리는 문구다. 회사의 철학을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게 보여주면서도 고객이 쉽게 기억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만드는 캐치(catchy)한 문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접하면 책을 읽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열정이 솟구쳐서 서점에서 책을 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게 된다. 물론 책(구입) 중독자의 충동구매에 대한 핑계일 수 있다.
이 문구에서 내가 한 가지 더 주목하는 점이 있다. 'A는 B를 만들고, B는 A를 만든다'는 문장구조다. 이는 마치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어서 원형을 이루는 뱀(혹은 용)인 '우로보로스(ouroboros)'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구조의 문장은 사실 꽤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말이다. 응용하기도 쉽다. "브런치는 작가를 만들고, 작가는 브런치를 만든다", "선생님은 학생을 만들고, 학생은 선생님을 만든다"와 같이 말이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메시지에 그치지 않는다. 같은 현상을 신선하게 바라보는 프레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인간이 곡물을 이용했다'라고 한 방향으로만 농업혁명을 바라볼 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곡물이 인간을 이용했다'는 반대방향으로 현상을 바라보았다. 그 결과 <사피엔스>는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책이 되었다(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이는 위에서 말한 'A는 B를 만들고, B는 A를 만든다'라는 구조를 활용한 것이다.
이 구조적 사고를 투자에 활용하여 큰돈을 벌 수도 있다. '영국 은행을 파산시킨 사람'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본인의 지론으로 '재귀성 이론(Theory of Reflexivity)'을 이야기한다. 어려워 보이는 말이지만 이는 지금까지 말한 'A는 B를 만들고, B는 A를 만든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주 쉽게 말해 "투자자의 편향이 주가를 만들고, 주가는 다시 투자자의 편향을 만든다"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이론에 근거하여 20조 원 이상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이처럼 'A는 B를 만들고, B는 A를 만든다'가 멋진 메시지, 세상을 신선하게 바라보는 시각, 투자의 비법 등과 같이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성립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진리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보리수나무 아래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부처)은 그 진리 말이다. 바로 연기법(緣起法)이다.
불교사상에 이해가 깊지 않기에 연기법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한다. 다만 내가 이해하는 얕은 지식에 근거해서 설명하면, 연기법은 "모든 것은 '상호의존적'이며 '인과관계'로 얽혀있다는 일종의 우주적 법칙"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 주야장천 이야기하고 있는 'A는 B를 만들고, B는 A를 만든다'는 연기법의 대표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종교를 창시한 성자의 궁극적 깨달음에 근거하기에 'A는 B를 만들고, B는 A를 만든다'는 다종다양한 영역에 적용가능한 것이다. 종교는 시공간을 초월한 '진리'를 다루기에 이는 과거 현재에도 그러했듯 미래에도 적용가능할 것이다.
교보문고를 갈 때면 오늘 글처럼 두서없이 잡다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정신을 차린 순간에는 어김없이 내 손에수북한 책꾸러미가 쥐어진 것을 보게 된다. 이게 다 교보문고의 멋진 문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