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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Feb 14. 2023

토익 만점자가 12년 만에 시험을 보면?



2011년 토익 만점을 받은 후 영어 시험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는 만점자의 시험성적 유효기간을 무제한으로 처리했기에 시험을 볼 이유가 없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올해 토익 시험을 다시 보게 되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굳이 이유라고 한다면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친구 따라 토익시험장에 가게 된 것이다.


언어는 운동과 닮아서 꾸준히 하지 않으면 퇴화하는 경향이 있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가 한국에서 오래 활동을 하다 보니 일본어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영어공부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꾸준하게 영어로 된 책이나 영상을 접함으로써 영어에 대한 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영어 실력이 12년 전보다 더 늘지는 않았을지언정 퇴보하지는 않았으리라 굳게 믿으며 별다른 준비 없이 토익시험을 보러 갔다.


시험장의 풍경은 예전과는 미묘하게 달라 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점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먼저 책상 및 응시자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빽빽하게 배치된 책상과 사람으로 인해 주위 사람의 열기를 느끼며 시험을 봐야만 했던 과거와는 달리 책상의 수도 그리고 간격도 멀어졌고, 응시자의 수는 책상 수보다 훨씬 적어서 빈자리가 곳곳에 보였다.


소음 또한 확연히 줄어들었다. 12년 전에는 교실 내 냉난방 기계가 덜덜거리며 작동했기에 시험 중에는 어쩔 수 없이 끌 수밖에 없었다. 여름에는 땀을 흘리며, 그리고 겨울에는 달달 떨며 시험을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12년 후의 고사장은 너무나도 쾌적한 환경이었다. 시험 당일 꽤나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교실은 조용한 난방기계를 통해 적정 온도로 유지되었다.  


스피커 음질 또한 전반적으로 좋아졌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좋은 스피커가 구비된 학교가 많지 않아서 귀가 예민한 사람은 스피커가 좋다고 알려진 시험장에서 시험을 보기 위해 집에서 아주 먼 거리의 고사장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피커 음질이 좋지 않아서 시험을 망쳤다는 후기가 빈번하게 등장했는데, 시험을 본 후 토익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 그러한 후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러모로 12년 전보다 토익시험을 보기에 훨씬 나은 환경이었다. 토익 만점보다 높은 점수가 있었다면 그 점수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기분과 자신감은 시험 시작 후 바로 사라졌다. 12년 전에 너무나도 쉽게 풀었던 LC(Listening Comprehension: 듣기 시험) 1번 문제부터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험 전 가득했던 여유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시험에 초집중을 했다. 일단 발음이 예전과 다르게 다채로웠다. 12년 전에는 미국식 영어가 대부분이었고 아주 가끔 영국식 영어가 섞여 나왔던 것 같은데, 이제는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 등 다양한 영어 발음이 비빔밥처럼 섞여서 나왔다.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문제조차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LC를 마치고 나서 RC(Reading Comprehension: 읽기 시험)를 풀기 시작했다. LC때의 초집중 상태가 유지되서인지 아니면 12년 전보다 영어 읽기 실력이 더 늘어서인지 수월하게 문제를 풀어나갔다. 12년 전에 토익 만점을 받았을 때도 시험 종료 1분을 앞두고 마킹을 겨우 다 마칠 정도로 시간이 빠듯했는데, 이번에는 15분가량을 남기고 모든 문제를 다 풀었다.


요약하자면 12년 전보다 시험장 환경은 많이 개선되었고, LC는 더 어려워졌으며 RC는 비슷하거나 쉬워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오후 12시에 콩닥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조심스레 토익 성적을 확인했다. LC를 잘 못 본 터라 점수가 생각보다 많이 낮을 것 같다는 예상을 하면서 성적확인 버튼을 클릭했다.  



다행히도 내 예상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고 예상대로 걱정했던 LC가 수월했던 RC보다 낮은 점수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년 만에 토익시험을 본 것치고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점수였다. <가나다라EFG 영어공부법>이라는 브런치북의 내용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다. 영어시험공부가 아닌 영어공부를 제대로 해두면 긴 시간이 흘러도 그리고 시험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증명을 12년 만에 본 토익시험 성적으로 한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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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brunchbook/kaptop9



사진: UnsplashNguyen Dang Hoang N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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