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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ug 30. 2023

좋은 공간에는 '이것'이 있었다.


서촌에 위치한 그리 크지 않은 카페를 방문했다. '인왕산 대충유원지'였다.


2명이 타도 꽉 찰 것 같은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카페가 위치한 4층에 도착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카페가 바로 보이지 않았다. 'ㄱ'자 모양으로 꺾인 구조의 짧은 길을 지나니 카페가 이윽고 눈에 들어왔다. 효율성 생각했다면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고객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굿'이었다. 아주 짧은 동선이었지만 하나의 이니시에이션(Initiation)을 만든 것이다. 우리말로 '통과의례'라고할까? 이러한 이니시에이션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곳이 절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명당에는 절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한때는 이러한 명당의 기운(?)을 느껴보고자 다양한 절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위에서 말한 이니시에이션이 존재했다.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등의 문을 지나야만 본당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절이 크건 작건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이니시에이션을 구성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효율성만 생각한다면 이니시에이션은 불필요하다. 고객이 바로 매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이니시에이션은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새로운 마음가짐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공간과 공간 사이의 경계이다. 익숙한 일상의 차원을 벗어나 낯선 비일상의 차원으로 들어가는 경계라고도 볼 수 있다.


이니시에이션이라는 개념을 알고 나서 일본을 방문하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왠지 모르게 좋았고 인상적인 모든 공간에는 이러한 이니시에이션이 존재함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공간 중 하나는 긴카쿠지(은각사)였다. 이에 대해서는 <교토의 디테일>에서 생각노트가 디테일하게 설명해 놓았다.


일본에서는 사찰 안으로 인도하는 길을 참도(參道)라고 하는데요. 이 길이 바로 긴카쿠지의 참도입니다. 참도의 목적은 '준비'입니다. 사찰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추스르고 신에게 참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어 주는 거죠. 잠깐이라도 삶의 짐을 덜어 놓고 신을 모시고 사찰을 둘러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마음이 담긴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생각노트, <교토의 디테일>, 북바이퍼블리, 2020. 중 -


긴카쿠지의 참도. 출처: 본인


언뜻 보면 별다를 게 없는데 자세히 보면 별다르다. 한쪽은 돌담 위 대나무로 울타리를 둘렀고, 다른 한쪽은 치자나무로 울타리를 쳤다. 그다지 길지 않은 길이지만 걷다 보면 많은 생각이 정리된다. 사찰에 다다를 쯤이면 모든 것을 편견 없이 그대로 흡수할 수 있는 백지가 된듯한 기분이다.


사실 이니시에이션이라는 게 거창할 필요는 없다. 위에서 말한 대로 일상과 비일상을 나누는 경계. 익숙함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 이 두 가지를 제공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이니시에이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공간에는 반드시 이것이 있었다. 효율이 아닌 이니시에이션이.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top7



사진: UnsplashSze Siang C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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