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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ug 16. 2023

벽돌공의 의미, 접객의 의미


마케팅이 무엇일까? 지금까지 수많은 마케의 정의를 직간접적으로 들어보았지만 단 한 번도 동일한 정의를 만난 적이 없었다. 큰 틀에서는 비슷해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르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틀에서 마케팅을 바라보는 경우도 허다했다.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공감 가는 정의도 있었고, 마케팅을 책으로만 배운 듯 뜬구름 잡는 소리도 있었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건드려주는 신선한 정의도 있었고, 이미 아는 말이지만 늘 명심해야 하는 정의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박종윤 대표가 <내 운명은 고객이 정한다>에서 말한 마케팅은 공감이 가면서도 도움이 되는 정의였다.


저는 마케팅을 설명할 때, '상품-모객-접객-관리'의 네 요소가 '고객'이라는 두 글자 안에서 순환되는 구조, 그 이상 그 이하를 말하지 않습니다.

- 박종윤, <내 운명은 고객이 결정한다>, 쏭북스, 2019. 중 -


단순 명료 정의다. 마케터는 자칫 네 요소 중에서 고객을 오프라인 혹은 온라인 매장으로 불러 모으는 '모객'만을 마케팅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박종윤 대표가 말한 대로 '고객'이라는 두 글자가 포함된 모든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이 중에서 '접객'에 대해 생각해볼까 한다.


'손님을 접대한다'는 사전적 정의의 '접객'은 생각보다 복잡한 개념이다. '손님은 왕이다'가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접객은 어떠한 숫자도 될 수 있는 x라는 변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접객이라는 변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접객의 효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 유명한 세 명의 벽돌공 이야기처럼 말이다.


세 명의 사람이 벽돌을 쌓고 있었다. 한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가 직업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첫 번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벽돌공입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들게 벽돌을 쌓고 있지요."

두 번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건축가입니다. 벽을 세우고 있지요."

세 번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대성당 건축가입니다. 전능하신 신을 위해 아주 멋진 대성당을 만들고 있지요."

- 참조 문헌: https://sacredstructures.org/mission/the-story-of-three-bricklayers-a-parable-about-the-power-of-purpose/ -

 

위 이야기에 나온 '벽돌공' 중 누가 일을 가장 열심히 그리고 잘할지는 분명해 보인다. 자신의 일을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 일을 대하는 태도나 결과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접객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고객이 부담스러워하거나 화가 나는 접객이 될 수도 있고,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접객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일본의 접객문화인 오모테나시를 알아보면 좋을 것 같다.


최한우의 <오모테나시, 접객의 비밀>(스리체어스, 2017)에 따르면 일본의 접객문화인 '오모테나시'는 크게 네 가지 의미가 있다.


1) 신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최대한 표현하는 것

2) 손님에 대한 환대

3) 손님에 대한 고치소오 [훌륭한 대접]

4) 온 마음을 다하여 손님을 맞이하는 것


태어난 장소에서 멀리 이동하지 않고 일생을 살아야만 했던 고대의 일본인에게 처음 보는 사람의 등장은 경계심과 경외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즉 '오모테나시'는 어찌 보면 손님을 신으로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신은 인간을 한없이 사랑함과 동시에 무서운 벌을 내릴 수도 있는 존재이기에 경외의 대상임과 동시에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일본인이 접객을 정의하는 방식인 오모테나시다.


일본 여행을 갈 때마다 이러한 오모테나시를 경험하곤 한다. 감동스러울 정도로 친절하나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분명하게 느낀다. 직원과 나 사이에 분명한 선이 존재한다. 그 선을 직원은 절대로 넘지 않고, 나도 감히 넘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그들의 경외와 경계가 만들어낸 분명한 선이 아닐까 싶다.


오모테나시를 염두에 두고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을 비교해 봐도 흥미롭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스타벅스는 하워드 슐츠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바에서 큰 영향을 받았고, 블루보틀은 창업자인 제임스 프리먼이 일본의 깃사텐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스타벅스의 접객은 '빠름의 미학'과 '캐주얼한 환대'가, 블루보틀은 '느림의 미학'과 '공적인 환대'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마도 영향받은 문화권에 의한 상이한 접객의 정가 이를 좌우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블루보틀은 지금까지 말한 '오모테나시'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블루보틀에서 왜색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벽돌공이 스스로를 정의 내린 것처럼, 접객도 그 정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제 나만의 접객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 볼 차례인 것 같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top7


사진: UnsplashMax Sa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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