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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ug 14. 2023

가르치려는 마케팅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

* 인물과 기업을 특정하지 않기 위해 일부 각색하였습니다.


꽤나 큰 기업에서 마케팅 제안을 해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다른 프로젝트로 바쁜 상황이었기에 정중히 거절을 했다. 그런데 담당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회사소개 자료만이라도 달라고 했다. 제안서는 없어도 괜찮으니 회장님께 구두로 제안만 해달라는 요청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큰 기업에서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요청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팅 당일 강남에 있는 회사에 도착하자 실무진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반겨주었다. 실무진과 함께 도착한 회의실에는 90년대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위계적인 느낌의 기다란 직사각형 나무 테이블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끝에서 말하면 반대편 끝에서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긴 테이블이었다. 다양한 연차로 구성된듯한 직원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딱 우리 회사 사람들이 앉을 의자와 단 하나의 의자만 빼고 말이다. 상석의 의자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누가 앉을지가 명확해 보였다. 바로 이야기로만 들은 회장님이었다.


회장님이 오기 전에 그 자리에 있는 분들과 명함을 교환하고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미리 받은 자료에 대한 설명도 다시 한번 듣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비밀통로처럼 보이는 문에서 회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나왔다. 순간 회의실 벽이 열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회장님 집무실이 회의실과 연결된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장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도 에둘러서 말하지 않고 프로젝트에 대한 우려점을 바로 밝혔다.


회사로부터 전달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대중을 가르쳐야만 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유튜브를 보는 대중들 모두를 책을 읽게 만들어서 결국 종이책을 팔고자 하는 프로젝트와 비슷했다. 나는 이것이 얼마나  많은 돈이 들고 성공확률도 극히 낮은 지를 이야기했다. 그냥 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순간 회의실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회장님은 "흠.. 끙"하는 소리와 함께 본인의 성공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대기업 임원으로 있으면서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를 성공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묵묵히 듣다 보니 그것이 성공한 두 가지 이유가 보였다. 먼저 그 대기업이 원하던 방식대로 대중은 이미 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 회사가 마케팅을 하지 않았더라도 대중은 변했을 거라는 말이다. 두 번째로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엄청난 규모의 마케팅이었다. 이 두 가지가 조합이 되 마케팅이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토론의 장도 아니고, 더 이상 솔직한 내 이야기는 의미가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현대 광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클로드 홉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단 한 편의 광고도 습관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내가 성공한 비결은 모든 광고의 결과를 면밀히 추적하고 철저히 원칙에 충실한 것이었다." (참고 도서: 클로드 홉킨스, <못 파는 광고는 쓰레기다>, 인포머셜마케팅연구소, 2014).


그가 강조한 것은 대중을 이해하고 그 이해의 지점에서 광고(마케팅)를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대중을 가르치고 바꾸라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에 크게 동의한다.


물론 대중을 가르치면서 그래서 습관을 바꾸면서 성공한 마케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간단하게 빵과 주스만 먹던 미국인들의 습관을 바꾸어 아침에 베이컨을 먹게 만든 것도, 일본인들이 크리스마스에 KFC에서 치킨을 먹게 된 것도 다 마케팅의 힘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치려는 그리고 대중의 습관을 바꾸려는 마케팅은 엄청난 교육 비용이 들지만 그 성공 확률은 상당히 낮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고, 대중이 이미 그러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때에 최적의 마케팅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가르치려는 유형의 프로젝트를 요청받으면 늘 먼저 우려를 표하곤 한다. 꼭 해야만 한다면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우려점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대중을 가르치고 그들의 습관을 바꾸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 과실을 경쟁사가 가져갈 수 있다.


기존과 똑같고 성공이 검증된 마케팅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대중이 원하지도 않는데 가르치려 하는 것,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 무언가를 하게 만들려는 마케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내가 요청을 받았던 마케팅 프로젝트도 그러했다.


미팅 후에 따로 추가 제안을 하지 않고 마무리했다. 3년이 지난 시점에도 그 회사의 제품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는 멋없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려는 마케팅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다시금 일깨워주고자 하기 위함이다.


가르치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 설득이 아니라 납득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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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LexSc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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