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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May 29. 2023

서울대생이 취직이 안될 때 뉴스가 된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취업을 하면 뉴스가 아니지만 취업에 실패하면 뉴스다. 취업에 실패한 서울대생이 심지어 학벌 외에도 다른 스펙까지 화려하다면 더더욱 뉴스가 될 확률이 높다. "3개 국어가 가능한 회계사 자격증 소유의 서울대생도 취업 실패"처럼 말이다.


뉴스는 말 그대로 '새로운(New) 것들(s)'이다. 그래서 서울대생이 취업을 하는 것은 새롭지 않은 일이다. 즉 뉴스가 아니다. 반대의 경우는 흔하지 않은 새로운 것에 가깝기에 뉴스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부정적'인 소식이기에 조금 더 뉴스가 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우리가 접하는 뉴스는 배드 뉴스(Bad News)가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에 더 잘 반응하게 설계되어 있다. 앞마당에 사과나무가 열렸다는 좋은 소식에 뒤늦게 반응해도 생존의 기회는 있지만, 앞마당에 사자가 나타났다는 나쁜 소식에 뒤늦게 반응하면 바로 죽음이다. 이렇게 나쁜 소식에 기민하게 반응한 사람의 자손만이 살아남았다.  자손이 우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뉴스는 기본적으로 '배드 뉴스'이고, 우리는 이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이를 간파한 사람들은 빠르게 공포 비즈니스를 만들어냈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비즈니스가 공포 비즈니스일 것이다. 동서양을 통틀어서 공포적인 요소가 없는 종교를 찾기 힘들다. "악한 행위를 하면 지옥에 간다", "깨닫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등과 같이 말이다.


비단 종교뿐이던가. 세상 거의 모든 비즈니스는 공포에 기반하고 있다.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메시지를 반대로 보면 '공부를 못하면 실패한다'로 읽힌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워지면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메시지 아래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외면받는다는 공포가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고통이 부재한 상태가 행복"이라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말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하는 이유를 우리 모두가 안다. 바로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서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지렁이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밟히기 전에 꿈틀 한다는 점이다(나은 점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공포는 고통을 예견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매일 꿈틀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고통을 피하기 위해 공포를 감지하는 우리는 오히려 더 큰 고통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어나지도 않은 혹은 일어나지도 않을 고통을 매일매일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끊어내고자 했다. 그래서 <Economist>와 같은 경제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뉴스, 신문, 인터넷 기사를 끊어냈다. 불필요한 공포로부터 벗어났다. 세상사로부터 멀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과는 달리 알아야만 하는 정보는 어떻게든 내 귀에 들어왔다.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생각보다도 많은 불필요한 정보를 접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배드 뉴스를 지속적으로 접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공포를 회피하는 방향이 아닌 기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 기쁨은 나만의 기쁨이 아닌 모두를 위한 기쁨일 것이다.



P.S.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과 공포 비즈니스에 잠식되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을 한다. 그리고 배드 뉴스가 아닌 굿 뉴스를 한 단어로 가스펠(Gospel)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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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Roman Kr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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