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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Mar 15. 2023

지성인의 척도


소설 <삼국지>에서 단 한 명의 브레인(Brain)을 꼽는다면? 대부분 제갈공명을 꼽을 것이다. 


등장인물의 능력을 수치화해 놓은 게임 <삼국지>에서도 제갈공명의 지력은 부동의 1위다. 역사적 사실이 어떻든 간에 소설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제갈공명은 그야말로 최고의 지략가이다. 


게임 <삼국지 7>의 제갈량 능력치. 사진 출처: namu.wiki


유비는 천하제일의 지략가인 제갈공명을 본인의 군사(軍師)로 삼기 위해 그의 집을 직접 찾아간다. 그런데 갈 때마다 번번이 우회적으로 퇴짜를 맞게 된다.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세 번이나 제갈공명의 초가집에 찾아가서 진실된 마음을 전하였고 마침내 그의 마음을 사서 제갈공명을 본인의 사람으로 만들게 된다. 이를 가리켜 인재를 얻기 위해 초가집을 세 번이나 방문한다는 뜻의 '삼고초려'라는 말이 탄생했다.


그런데 제갈공명은 당시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유비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했던 것일까? 그것을 알 수 있는 힌트가 있다. 바로 제갈공명의 방문 앞에 붙여놓은 편액(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에 쓰인 글귀다. 그것은 바로 '인생이라는 큰 꿈을 누가 먼저 깨달을 것인가'라는 뜻의 '대몽수선각(大夢誰先覺)'이었다.


조용헌이 쓴 <조용헌의 도사열전>에 따르면 꿈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잘 때 꾸는 꿈인 소몽(小夢), 하루 일과를 꿈으로 보는 중몽(中夢), 그리고 인생 전체를 꿈으로 보는 대몽(大夢). 제갈공명은 인생 전체가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실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의심하고 숙고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질문했던 철학자가 있다. 바로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악마의 속임수에 의한 착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의심했고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는 자신이었다.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의 탄생이었다. (그런데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란 누구인가를 끝없이 생각하면 데카르트의 명제 또한 궁극의 진리는 아닌 것 같다)


삼국지 최고의 지략가와 근대 철학가의 아버지 모두 확신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아는 사실이 틀릴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사람들이었다. 이 여지가 지성의 척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천재는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바보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더닝 크루거 효과다.


더닝 크루거 효과 (Dunning-Kruger Effect)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오류를 알지 못하는 현상으로, 심리학 이론의 인지편향(認知偏向) 중 하나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코넬 대학교 사회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과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가 코넬 대학교 학부생들을 실험한 결과를 토대로 마련됐다.

이 이론에 따르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반면 능력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한다. 또 능력이 없는 사람은 타인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며,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발생한 결과를 알지 못한다. 이들은 훈련을 통해 능력이 향상된 후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깨닫고 인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 pmg지식엔진연구소,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중 -


그렇다면 자신을 과소평가하기만 한다고 천재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노력했다'가 참이라도 '노력하면 성공한다'가 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명제의 역은 바로 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치다 다쓰루가 지성(intelligence)을 매핑(mapping)에 빗대 설명한 내용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지성'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매핑'하는 능력이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말할 수 있고 필요한 데이터와 기술이 '어디에 있고 어떤 수순을 밟으며 손에 들어오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 '지성'의 작용이다.

- 우치다 다쓰루의 <어른이 된다는 것>(서커스, 2021) 중 -


우치다가 말한 대로 내가 모른다는 것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해야만 지도를 그릴 수 있다. 다른 말로 지성이란 아는 것을 쌓아가는 이라기보다는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획득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발견하는 이다. 그래서 시작점은 '확신'이 아닌 '의심'일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P.S. "너 자신을 알라"는 인간의 외부로 향한 시선을 내부로 거두어들이는, 형이상학(metaphysics)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라고도 생각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kaptop7


사진: UnsplashMarkus Spis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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