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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n 21. 2023

현실주의자를 다시 바라보다


MBTI에서 두 번째에 위치하는 알파벳인 'N'과 'S'를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다음의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만약 100억 원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래?"


N성향이 강한 사람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즐겁게 이야기할 것이고, S성향이 강한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질문자에게 역질문을 할 것이다. 즉 일어나지 않은 혹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두고 N과 S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N을 '몽상가' S를 '현실주의자'라고도 부른다.


나는 이러한 구분법이 무언가 찜찜했다. 상상과 현실을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러한 이분법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을 했다. 그러다 나의 생각을 지지하는 듯한 문장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 여기에는 없지만 '얼마 안 되는 입력의 차이로 있을 수 있는 것'과 '천지가 뒤집혀도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을 똑같이 '리얼이 아닌' 것으로 처리해 버리고 '현실이 아니니까 그것에 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리얼'이라는 것에 관해서 이해가 너무 얕아. 그런 인간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신을 '리얼리스트'라고 뽐내고 '있을 수 있었던 세계'에 관해서 생각하는 사람을 망상적이라고 믿는 것을 보면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지.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지금 여기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복수의 평행 세계적 리얼리티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는 거잖아. 그 복수의 리얼리티를 자신의 상상력과 지력(知力)을 구사해서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사람이 진자 리얼리스트라고 나는 생각해.

- 우치다 다쓰루, <침묵하는 지성>, 서커스, 2021. 중 -


요약하자면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리얼리스트(이 글에서는 현실주의자와 동의어로 쓰고자 함)라는 주장이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과대망상', 반대를 '미소망상'이라고 한다. 이를 현실을 보는 눈에 빗대어 보면 일어난 일만 생각하는 것은 '미소망상'에 가깝지 않나 싶다.


현실이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무수한 시나리오로 둘러싸인 선택된 시나리오다. 우리는 선택된 시나리오만 인지하지만 선택되지 않은 모든 시나리오를 포함해야만 온전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양자역학이 이를 과학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유명한 사고실험으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있다. 에르빈 슈뢰딩거라는 과학자가 양자역학을 비판하기 위해 설계한 사고실험인데 오히려 양자역학을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실험은 간단하다. (실제로 진행하는 실험이 아닌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실험이니 고양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1) 밖에서는 안을 보거나 들을 수 없는 상자에 고양이와 독극물이 든 유리병을 넣어둔다.

2) 독극물이 든 유리병이 언제 깨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깨지면 곧바로 고양이가 죽게 된다.

3) 상자를 열기 전에 고양이는 어떤 상태일까 생각해 본다.


상자를 열어보고 확인하기 전까지 고양이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를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는 모두가 동의할 만한 표현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에 따르면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는' 상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말이지만 과학적으로 그러하다. 관찰자가 하나의 상태를 인식(선택) 하기 전까지는 삶과 죽음이라는 시나리오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양이가 살아있는 시나리오와 죽어있는 시나리오가 모두 모여서 현실이 되듯, 우리의 삶도 수많은 시나리오가 모여서 현실이 되는 것이다. '현재'라는 것은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듯 수많은 시나리오 중 하나의 시나리오를 '인지'하는 순간이다. 즉 두터운 현실의 한 점인 것이다.


그래서 일어난 일만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쩌면 '현재주의자'라고 불러야 더 맞지 않을까 싶다. '현실주의자'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시나리오를 인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MBTI 두 번째 알파벳이 'N'인 현실주의자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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