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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pr 23. 2022

쫄았으면 쫄지 않은 척이라도 해!

용기

X발! 지금부터 쫄면 다 죽는다


누가 봐도 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쫄지말라고 군대 선임은 말하곤 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내가 장교생활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가장 들어가기 힘든 군대로 알려진 '공군 어학장교'로 군 복무를 했다.

최강 연승 퀴즈쇼에 나온 공군 어학장교 후배들. 사진 출처: MBC


내가 복무할 당시만 해도 공군 어학장교로 합격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아이비리그 출신'들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적게는 5년 많게는 20년 넘게 영어권 국가에서 자란 동기들과 특기교육 기간 동안 '영어 통번역'으로 경쟁을 해야만 했다.


이런 쟁쟁한 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어서 그냥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공군 어학장교 특기교육은 단체기합을 받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선배들 앞에서 통번역 시험을 볼 때 내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 동기 전체가 기합을 받는 구조였다. 나 혼자 기합을 받는 것은 육체적 고통에서 끝이 나지만 나 때문에 동기 전체가 단체기합을 받게 되면 그것은 육체적 고통으로만 끝이 나지 않는다.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심한 심적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비롯해서 모든 동기들은 이 육체적/심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특기교육기간 동안 하루에 2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다. 말도 안 되는 수면 부족 상태에서 미친 듯이 공부를 하고 또 기합까지 받는 그야말로 극한의 상황이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선배들은 기합을 줄 때마다 반복해서 "쫄지마"라는 이야기를 반복하곤 했다.


그래도 우리들이 쫀 것처럼 보이면(아마도 이 상황에 처하면 모든 사람들은 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쫄았으면 쫄지 않은 척이라도 해!


"기합을 주면서 쫄지 않은 척이라도 하라니? 이게 뭔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소리인가?"라는 생각을 그 당시에는 많이 했었는데 나중에 자대 배치를 받고 깨달았다. 그렇게 극한의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두뇌를 풀가동하는 연습, 즉 쫄지 않는 연습이 후에 그 어떤 자리에서도 쫄지 않고 통역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군생활에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유수의 기업의 회장님들 앞에서 PT(프레젠테이션)를 할 때도 쫄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발표를 할 수 있게 하는 정신적 밑거름이 되었다.


 군대에서의 경험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넬슨 만델라가 말한 용기의 정의도 같이 생각하곤 한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이 있음에도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늘 당당해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은 매번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늘 두려워하고 쪼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30년 넘게 무대에 올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온 인순이 씨도 무대에 오를 때마다 아직까지 떨린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니 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했다면 다음을 주문처럼 되뇌어 보자.


쫄리지만 쫄지 않은 척이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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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kap/11

 


Photo by Sammie Chaff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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