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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pr 05. 2023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들


며칠 전 지인의 SNS에 달린 댓글을 보고 순간 멍해졌다. 단 한 문장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본 철학자들의 용어가 난무하고 다양한 외국어가 혼재해 있는 가운데 문장의 길이도 꽤나 길었다. 나름 1년에 수백 권의 책을 읽고 문해력에도 큰 문제가 없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SNS 댓글 앞에서 나의 문해력은 힘을 쓰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자기반성을 하기에 앞서 진짜 나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도 이해를 못 하는 것인지 살펴보았다. 분위기를 보니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의 댓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각기 다른 해석으로 그의 댓글에 대댓글을 달고 있었으니 말이다.


살다 보면 너무나도 어렵게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저~엉말 어려운 것을 사~알짝 어려운 것으로 쉽게 풀어서 말하는 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것이 태반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짧은 생각이지만 크게 세 가지 이유가 떠오른다.



1. 본인도 이해를 못 해서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무언가를 간단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기립박수를 전하고 싶다. 물론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간단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암기'에서 '깊은 이해'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경우는 대부분 지적허영심이 그 원인이다.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개념을 말하다 보니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어려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메타 메시지(메시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려운 개념을 술술 말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2. 공격받기 싫어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해 비판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침묵할 것이다. 하지만 '죽어있으면서 살아있는 생명체는 있을 수 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와 같은 주장에 대해서라면 많은 사람이 본인만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말하는 내용이 쉬우면 쉬울수록, 그리고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반론이 쉽게 나오게 된다. 인터넷 댓글만 봐도 이점을 알 수 있다. 내용이 전문적이고 복잡한 내용에는 악플이 별로 달리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이해가능한(혹은 이해했다고 오해할 수 있는) 내용에는 수많은 반론과 악플이 달린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공격받기 싫을 때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방식이, 그래서 게으른 방식이, 어렵게 말하는 것이다.


3. 독자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 그런 내용들로 가득한 책을 읽을 때면 후루룩 책장을 넘기면서 읽게 된다. 마치 시속 400km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처럼 세세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를 집중하게 만들려면 가끔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있다. '난해함' '잘 이해되지 않음'이라 불리는 브레이크로.


다만 이 브레이크는 반드시 독자의 지적욕망을 자극해야 한다. 어려워 보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 독자가 읽기를 포기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이를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간청'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곤 한다.

언어가 지닌 창조성은 독자에게 간청하는 강도와 비례합니다. 얼마나 절실하게 독자에게 언어가 전해지기를 바라는지, 그 바람의 강도가 언어 표현의 창조를 추동합니다.

- 우치다 다쓰루의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원더박스, 2018) 중 -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볼 것 같다. 너는 어떻게 이 세 가지 이유를 알고 있냐고. 바로 내가 그랬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똑똑해 보이기 위해서, 때로는 공격받지 않고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쉬운 말도 어럽게 했던 과거의 나를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어려운 개념은 때때로 '간청'이라는 태도로 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나의 글쓰기와 말하기는 '어려운 것을 쉽게'로 향해 있다. 그래서 이 글이 어려웠다면 그것은 모두 내가 부족한 탓이다. 여러분의 문해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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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Dan Cristian Pădure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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