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모든 인용문의 출처는 박철용의 <MBTI의 의미>(하움출판사, 2020)이다.
MBTI의 첫 글자인 E와 I는 흔히 외향과 내향이라고 부른다. E는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겨하고, I는 집에서 혼자 있는 것을 즐겨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더 나아가 E는 '인싸', I는 '아싸'로도 불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는 수도 없이 보았다. 그리고 나도 'E'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기에 이에 대해서는 늘 혼란스러웠다.
저자도 이에 대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E와 I를 외향/내향으로 구분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E와 I를 활발/얌전으로 구분하고 외향과 내향을 정반대의 특질이라기보다는 동시에 높을 수도 혹은 낮을 수도 있는 특질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의 상관연구들에 비추어볼 때, 외향성과 내향성은 서로 반대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과 내부세계에 대한 관심은, 둘 중 하나만 높을 수도 있지만, 함께 높을 수도, 함께 낮을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들까지 고려하면, '태도 유형'은 두 가지가 아니라 네 가지가 되어야 한다.
1) 외향형(ES): 외부세계에 관심이 많고 내부세계에는 관심이 적다. 관념적인 것에는 관심이 적고, 실체적인 것들에만 관심이 많은 편이다. 대중문화나 유행을 잘 쫓아가는 유형이다. 이들에게는 집단이나 사회의 일반적인 성격이나 가치관이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인이다.
2) 양향형(EN): 외부세계와 내부세계 양쪽에 관심이 많다.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도 열성적이지만, 정신적인 것들에도 관심이 많다.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다. 외부세계와 내부세계 어느 한쪽에만 몰두하기보다는 양쪽을 왔다 갔다 한다. 양쪽의 자원을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낸다.
3) 소향형(IS): 외부세계와 내부세계 양쪽에 적당한 관심만 보인다.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가족이나 조직의 일원으로서 묵묵히 공헌한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기에 이들의 기여가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은 이들이 있기에 세상이 돌아간다.
4) 내향형(IN): 내부세계에 관심이 많고 외부세계에는 상당히 무관심하다. 타인이나 사회를 따르는 경향이 가장 약하다. 관념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지적이고 생각이 깊은 경우가 많다. 실용성이나 수익성이 없더라도 자신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한다.
2. T는 감정이 없고 F는 이성적이지 않다?
칼 융의 심리유형론에서 사고(T)와 감정(F)은 둘 다 이성적 기능(Rational Function)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T유형을 이성적인 유형, F유형을 비이성적인 유형이라고 이해하면 아예 틀리다. T유형은 이성적 판단에서 논리를 중시하는 사람, F유형은 이성적 판단에서 윤리를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3. MBTI는 21세기 혈액형이다?
MBTI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MBTI를 발전된 혈액형이라고 이야기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유형을 나누는 방식 자체가 아예 다르기 때문에 이를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이 책에 따르면 '혈액형'은 포러 효과(바넘 효과)에 근거한 것이고, MBTI는 이와 정반대의 이분법적 유형론이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두리뭉실한 글이나 말을 사람들이 꼭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느끼는 현상을 "포러 효과" 혹은 "바넘 효과"라고 한다. 별자리나 혈액형 성격설, 점쟁이의 점괘가 꼭 맞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대개 이 포러 효과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모호한 언어를 써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실제로 포러의 해설지는 점성술 책에 있는 말들을 짜깁기 해서 만든 것이었다.
보다시피 MBTI의 이분법적 유형론은 포러 효과와는 정반대의 문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는 사람들이 중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MBTI는 그들을 억지로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중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노려서 사기를 치는 별자리나 혈액형 성격설과는 정반대다.
박철용 작가도 책에서 밝히고 있지만 MBTI는 불완전한 성격유형론이지만 그 나름의 유용함이 있다. 나를 이해하는 수단을 넘어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에 크게 공감한다. MBTI를 타인을 하나의 틀에 가두는 고정관념이 아닌, 스스로의 세상을 벗어나 다양한 타인의 틀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꽤나 유용한 수단이지 않을까 싶다.
P.S. 수많은 인간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는 것에도 비판이 있는데, 유형론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다. 다종다양한 강아지들을 모두 강아지로 분류하고, 수많은 한국음악을 K팝으로 구분하는 것처럼 말이다. 유형론은 그래서 유형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