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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May 04. 2023

누우면 살고, 서면 죽는다


지인과 함께 독립출판사 '소피스트'를 만들고 올해 1월에 첫 책을 공식 출간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1138718


교보문고, 예스24와 같은 대형 서점에서 우리의 책이 판매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웹사이트에서 책을 검색해 보았다. 판매와 상관없이 검색이 된다는 사실 자체에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오프라인 서점에 방문해서 우리 책을 본 순간 출판업계의 격언을 떠올리게 되었다. "누우면 살고, 서면 죽는다." 우리 책은 죽어가고 있었다.


고객일 때는 전혀 몰랐다. 그렇게나 많은 책이 서점의 책장에 서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부분의 고객은 베스트셀러란에서 위풍당당하게 표지를 드러낸 책이나 매대에 누워있는 책을 볼 뿐이지, 서가에 꽂힌 책을 보지 않는다. 그쪽은 철저하게 외면받는 공간이었다. 서점에 있다고는 하나 보이지 않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책들이 모두 그곳모여있었다. 서있는 책의 존재 목적은 '판매'가 아닌 서점이라는 공간을 더욱 서점답게 보여주는 '장식'에 가까웠다.


우리의 첫 책은 불행히도 분만실에서 바로 장례식장으로 이동한 것이다. 어떻게든 살려야만 했다. 작가이자 소피스트 공동대표인 로히는 교보문고에 부단히 연락을 하며 우리 아이를 어떻게 눕힐 수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책은 가까스로 눕게 되었다. 죽음에서 부활한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새삼 느끼게 되었다. 소비자일 때 보이지 않던 것이 생산자가 되면 비로소 보이게 된다고. 모두가 동일한 세상을 본다고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경험에 따라 우리의 시야는 확장되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한다. 카페에서 한 번이라도 알바를 해본 사람은 카페를 방문했을 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볼 것이다. 고객 상담을 해본 사람이라면 상담원을 대할 때 더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에 머무는 것이 아닌 생산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큰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고 더 나아가 책을 출간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독자일 때는 별생각 없이 타인의 책을 냉정하게 때로는 잔인하게 평가했는데, 이제는 창작의 고통을 그리고 책을 세상에 내놓는 두려움을 알기에 쉽게 평하지 못하게 되었다(나중에 다시 읽을 책을 분류하기 위해 부득이 별점으로 표시하곤 있다). 글을 읽을 때는 전에 보이지 않던 '접속사' '조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훈의 소설이 매끄럽게 읽혔던 이유는 불필요한 접속사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김혼비처럼 글빨(?)이 좋은 작가는 '은, 는, 이, 가'와 같은 조사를 적절하게 선택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생산은 소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소비자로서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면 한 번쯤은 생산자가 되어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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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davide rag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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