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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pr 25. 2023

미친 듯이 몰입하고 싶어요!


최근에 참여한 모임에서 '미치지 않으면 (일정한 수준까지) 다다르지 못한다'는 뜻의 '불광불급(不狂不扱)'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자기계발성 모임이라서 그런지 참여자 대부분이 좋은 의미로 미쳐있는 사람들이었다. 자는 시간 빼고는 일 생각밖에 안 한다는 사람. 술과 관련해서는 모르는 게 거의 없다는 사람. 새벽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컴퓨터를 키고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 미쳐있는 분야는 다양했지만 모두가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상위 1%에 다다른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본인이 미쳐있음을 간증(?)하는 자리처럼 느껴져서 나도 자연스레 한마디를 거들었다. 책에 미쳐있을 때는 1년에 320권(독후감을 쓴 기준)을 읽었고, 모임에 미쳐있을 때는 1년에 100여 개 이상의 모임에 참여했음을 밝혔다. 참여자들 입에서 "우와" 소리가 나온 걸 보면 다행히도 미친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았다.


미친 사람들(?)이 미침에 대해 미친 듯이 이야기할 때 유독 조용한 참가자가 있었다. 쭈뼛쭈뼛 눈치를 살피며 말할 타이밍을 보는 것 같았다. 이내 대화가 잦아들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도 한 가지 분야에 미친 듯이 몰입하고 싶은데 잘 안 돼요. 주위를 봐도 미쳐야 성공하는 것 같은데, 저는 그 정도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솔직한 본인 이야기를 꺼낸 그녀에게 다른 참여자들이 한 마디씩 위로 혹은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녀는 위로와 격려보다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미칠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는 쉽게 몰입하는 성향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다. 별다른 노력없이도 그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어렸을 때 주의가 산만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무엇이든 쉽게 질려하고 쉽게 몰입하지 못했다. 게임을 제외하고는 진득하게 오래 무언가를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1년에 수백 권의 책을 읽게 되었고, 여러 가지 일들에 미친 듯이 몰입하게 되었을까. 크게 두 가지의 계기가 있었던 것 같았다.



1. 죽음


막연하게 80~90살까지 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군입대 전까지는 말이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군대 훈련기간 초반에 정신을 잃고 대리석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들이 둥그런 원을 그리듯 머리를 맞대고 위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걱정과 놀람이 뒤섞여 있는 눈빛을 보니 무언가 큰일이 일어난 듯 보였다. 부축을 받으며 병원으로 가는 길에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은 외계인처럼 무언가 상하게 변해 있었다. 광대뼈가 그대로 주저앉은 것이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 급하게 서울로 올라왔다. 수술 중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적힌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죽음이라는 것이 예상된 시간에 찾아오지 않을 수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별문제 없이 몇 주간 회복을 하고 퇴원을 했다.


그 후로도 죽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삶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깊게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만약에 옆이 아닌 뒤로 쓰러졌다면. 그리고 무릎이 아닌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면. 아마도 나는 '삶'이 아닌 '죽음'에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삶의 덧없음과 유한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때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일 죽더라도 후회 없이 살아보자"라고.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지 말자고. 시간을 때운다는 말도 그러한 행동도 하지 말자고. 그렇게 주위 산만하게 어영부영 살던 삶에 죽음을 고하고, 죽은 것처럼 보이는 미친듯이 몰입하는 삶을 소생시켰다.


2. 끼리끼리


의식적으로 찾은 것인지 무의식이 나를 이끈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죽음을 계기로 나는 다른 환경에 놓여 있었다. 미친듯이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과 어느덧 함께 하고 있는  나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다양한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었고, 일에 미쳐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어느 순간 '미쳐있음'과 '몰입'은 도달해야 할 경지가 아닌 숨 쉬듯 자연스러운 '기본값'이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최적의 환경을 찾아 헤맨다. 그런데 정작 본인의 환경에는 꽤나 무심하다. 하고 싶고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리고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들로 가득한 환경에 나를 던져야 한다. 아이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듯 성인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환경에 물들게 되어있다. 미치고 싶다면 미친 사람들 곁으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모임에서는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경험을 근거 삼아 '죽음'과 '끼리끼리'에 대한 정보를 그녀에게 전했다.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참여자가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보아 크게 잘못된 정보는 아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모두가 미쳐야 하는 것도, 모두가 상위 1%에 도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면, 그리고 욕심도 없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이렇게 안분지족(安分知足)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삶에서 한 가지는 꼭 달성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미친 듯이 몰입해야만 한다. 미쳐야지 목표에 미칠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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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Vinicius "amnx" Am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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