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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May 10. 2023

친구보다 더 큰 도움을 주는 '이 사람'


창업을 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현대 사회의 문제는 똑똑한 사람은 자기 확신이 없고, 멍청한 사람은 자기 확신으로 가득한데 있다"라고 말했는데 내가 그 멍청한 사람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모르면 선배에게 물어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파트너사에 연락을 하면 되었다. 대기업이 주는 특권이었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도움을 받기 너무나도 수월한 환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창업을 하고 나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모르면 물어볼 사람도 없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기꺼이 도와주는 파트너사도 없었다. 모든 건 어떻게든 알아서 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모르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는데 있었다. 세상 이런 바보가 없었다. 일을 다 한건지도 모르겠고, 잘한 건지는 더더욱 알기 힘들었다.


이렇게 막막할 때마다 도움을 준 사람은 친구가 아니었다. 친구들은 도움을 주고 싶어도 도움을 주기 힘들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도 필요로 했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그들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서모임에서 만났거나 우연한 기회로 친해지게 된 사람처럼 적당한 거리감을 갖는 사람들이 필요할 때마다 큰 도움을 주었다.


김난도의 <트렌드코리아 2023>(미래의창, 2022)에는 '인덱스 관계'라는 개념이 나온다. 과거에는 관계를 '친하다/안 친하다'와 같아 이분법적으로 나누었다면 이제는 '대학교 친구', '인스타그램 친구', '관심사 친구'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관계를 나누어 관리한다는 개념이다. 앞서 말한 내게 도움을 준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업상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라고도 인덱스를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친구가 아닌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나만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야마구치 슈의 <일을 잘한다는 것>(리더스북, 2021)에 따르면 인맥은 크게 '친구', '동료', '지인'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일 관계로 인연을 맺기 가장 쉬운 것이 '동료'다. 친구는 취미나 생각하는 것이 유사해서 필요한 것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비슷해서 시너지가 나기 힘들다. 반면에 지인은 서로 간에 신뢰가 충분하지 않기에 일적으로 엮이기는 꺼려진다. 그래서 친구처럼 신뢰는 있으면서, 지인처럼 필요로 하는 것이 서로 다른 '동료'가 일적으로 도움을 주고받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관심 공동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치다 다쓰루의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위즈덤하우스, 2019)에 따르면 공동체는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사회학의 기본 개념에 게젤샤프트(Gesellschaft)와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가 있는데 순서대로 '이익공동체', '지연혈연공동체'로 볼 수 있다. 즉 게젤샤프트는 '회사동료', 게마인샤프트는 '가족'과 '학교 친구'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내게 도움을 주었던 지인, 그리고 야마구치 슈가 말한 '동료'는 게젤샤프트나 게마인샤프트에 속하지 않는다. 같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지연이나 혈연으로 엮인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이 '관심 공동체'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어에 무지하지만 인터레센샤프트(Interessenschaft)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물론 도움을 받기 위해 관계를 의도적으로 형성하라는 의도는 아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와 같은 거창한 이유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관계는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오래된 친구나 회사 동료 이외의 사람들, 특히나 동일한 관심사를 통해 알게 된 사람과의 관계를 가볍게 보지는 않았으면 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이 아니라, 평생 단 한 번뿐인 만남이라는 '일기일회(一期一會)'의 태도로 사람을 대하다 보면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동료'를 찾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동료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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