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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May 11. 2023

거대한 바위를 끌고 가보자


이별을 하면 슬픈 발라드의 이별 가사가 내 이야기가 되곤 한다. 마치 작사가가 나의 이별을 지켜보고 써 내려간 듯이 말이다. 평소에는 멜로디만 들리던 곡이 가사가 들리기 시작하고, 가사의 한 글자 한 글자가 빗방울이 흙에 스며들듯 가슴속에 스며든다. 음악은 이처럼 한 사람의 이야기로 모두를 설득하는 힘이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늘 보아온 뻔한 글도 상황에 따라 불현듯 번쩍하는 글이 된다. 나에게도 그러한 글들이 있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글은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 만났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칠 때로 지쳐있을 때 화장실 문에 적힌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익히 알고 있던 말이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전혀 다르게 보였다. 마치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내려오듯 한 글자 한 글자가 반짝거렸다. 이 고통스러운 순간도 곧 지나가리라는 유치원생도 아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이 문구 하나에 의지해서 힘든 훈련기간을 버텨냈다.


가장 최근에 번쩍였던 글은 김경만의 <극한직업 건물주>(매일경제신문사, 2021)에서 보았다. 고민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조물주 위의 건물주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 보고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는 생각을 조금은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함부로 건물을 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절하게 들었다. 그만큼이나 건물주는 책의 제목처럼 극한직업일 수도 있었다.  


저자는 어쩔 수 없이(?) 소유하게 된 건물이 팔리지 않아서 수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숨 쉴 때마다 은행에서 대출한 돈의 '억'소리 나는 이자가 빠져나갔다. 건물 보수공사를 할 때는 악질 민원에, 입주자에게는 터무니없는 요구와 협박에 시달리게 된다. 이 모든 문제를 고군분투하며 해결하고 있던 와중에 부인으로부터는 이혼 통보를 받게 된다. 정말로 극한까지 몰리게 된 것이다. 이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커다란 바위를 질질 끌고 가는 거지. 가다 보면 내가 죽든지 바위가 닳아 작은 돌멩이가 될 거야."  


그의 말에 머리가 번쩍했다. 나의 바위도 작은 돌멩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죽기 살기로 끌고 가다 보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바위를 끌고 가고 있다. 누구의 바위가 더 크고 무거운지는 사실 크게 중요치 않다. 나는 나의 인생밖에 살 수 없으니까 말이다. 크기의 상대성은 절대성이 돼버리고 마는 것이다. 모두에게 각자의 바위, 각자의 어려움은 절대적이다. 쉽게 말해 본인이 간 군대가 가장 힘든 군대인 것이다.


이때 이 바위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숨이 막혀온다. 제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한들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바위가 그대로라면 허무하고 힘이 빠진다. 그런데 김경만 작가의 말처럼 거대한 바위가 작은 돌멩이가 될 수 있다면, 그런 희망이 있다면 일단 미친 듯이 질질 끌고 갈 수 있는 의지가 생긴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이 예약된 인생에서 무엇이 더 두렵겠는가? 일단 질질 끌고 가보자. 그 바위가 얼마나 크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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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Emile Guillem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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