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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May 08. 2023

질문이 틀렸다!


1950년대 이후 미국과 소련(약칭 소비에트 연방으로 러시아 제국의 계승자)은 누가 더 먼저 우주를 개척하느냐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우주를 개척한다는 것은 우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지구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던 것도 무중력 상태인 지구 밖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중 하나가 '쓸 것'이었다.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에서는 잉크가 자연스레 아래로 향하기에 볼펜을 쓰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무중력 상태인 지구밖에서는 그렇지 않다. 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무중력 상태에서도 쓸 수 있는 '볼펜'을 만들 수 있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수백만 달러의 거금을 들여 어렵사리 무중력 상태에서도 쓸 수 있는 볼펜을 만들게 된다.


소련은 다른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무중력 상태에서도 쓸 수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잉크를 필요로 하는 볼펜 대신 연필을 쓰면 됐다. 올바른 질문을 통해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었던 것이다.


위 일화는 '질문의 중요성'을 주장할 때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상당 부분 왜곡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미국도 연필을 쓰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장거리 우주비행에서 연필의 작은 부스러기조차 위험요소가 되기에 무중력에서도 사용가능한 볼펜을 개발한 것이다. 소련도 나중에 무중력 볼펜을 사용했다.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 일화를 통해 우리는 질문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화 <올드보이>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라는 대사처럼 말이다. 틀린 질문에 대해 아무리 고민을 한다 해도 맞는 대답이 나올 수는 없다.


최근 챗GPT가 세상 만물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상당수의 전문가가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답을 잘하는 사람보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더 각광받을 것이라고. '질문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늘 말해온 입장에서 이러한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하는 바다. 하지만 최근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챗GPT인 오토GPT의 등장으로 질문하는 능력도 의미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뉴스


과연 그럴까? 유치하게 답변하자면 '안물안궁'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물어보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부분에 대해 오토GPT가 스스로 열심히 물어보고 대답한다고 해서 큰 의미가 있을까?(물론 오토 GPT는 인간이 목푯값을 주어야 작동한다고 한다)


또한 이는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충분히 예상된 바다. 인터넷의 정보검색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말이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포털 사이트에 궁금한 것을 검색해도 원하는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자 검색 결과의 정확도가 높아졌다. 심지어 검색어를 다 적기도 전에 '자동완성기능'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검색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검색조차 필요 없어졌다. 유튜브와 틱톡 같은 영상 플랫폼에서는 우리의 반응을 보고 무엇을 궁금해하고 좋아할지를 예측해서 최적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오토GPT가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하듯 다양한 플랫폼들은 이미 우리가 무엇을 좋아할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자. 오토 GPT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내린다고 해서 인간의 질문하는 능력이 쓸모 없어질까? 명확한 답이 있는 질문은 분명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뛰어날 수 있다. 하지만 답이 없는 질문은 결국 인간이 해야 하고 인간이 판단해야 할 것이다. 참과 거짓으로 명확히 나눌 수 없는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판단 그리고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미적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고 이에 대한 논의는 인간의 질문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자율주행기차가 갑자기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좌측 선로에는 아이가, 우측 선로에는 노인이 있다면 어느 선로로 주행해야 할까? 인공지능이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다. 이러한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 외에도 인간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해야 하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이러한 문제를 질문하고 답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어떠한 인간이 살아남을지 그리고 각광받는 직업은 무엇일지라는 지엽적인 질문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나를 포함하여 다수가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질문만 하다 보면 우리의 생각은 너무나도 좁은 틀에 갇히게 된다. 이제는 다시금 "인공지능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그에 대한 답은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만이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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