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한 사업가 분이 본인의 노란색 노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분은 책을 읽으면 반드시 내용을 요약해서 노트에 정리한다고 했다. 사업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노트를 꺼내어보면 그곳에는 늘 정답의 실마리가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역시나'를 외쳤다. 비범한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비망록(Commonplace book)'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 순간이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비망록은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 둔 것 또는 그런 책자"이다. 말 그대로 다양한 정보를 나만의 방식으로 요약해 놓은 책자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만나본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모두 저마다의 비망록을 갖고 있었다. 50대 이상은 대부분 줄이 그어진 노트나 캘린더 형태의 다이어리를 비망록으로 쓰고 있었다. 20대나 30대는 노션과 같은 디지털 도구를 주로 활용했다. 40대는 성격이나 취향에 따라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어떠한 곳에 정리하느냐는 차이가 있어도 중요한 정보를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것은 공통적이었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공통된 전통이기도 하다.머리 외부에 정보를 저장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이자 특기이니 말이다.
티아고 포르테의 <Building a Second Brain>에 따르면 예전의 영국인들은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독서를 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게 아니라 띄엄띄엄 필요한 부분을 읽고 자신의 노트에 정리하고 조합을 했다는 것이다. 즉 과거의 독서는 읽기와 쓰기가 하나의 세트로 구성된 행위였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로 중국에는 수필식의 기록인 '필기(筆記), 일본에는 베갯머리 서책이라고도 불리는 즈이히츠(隨筆)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산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강조했던 책을 읽고 중요한 부분을 베껴서 정리하는 '초서(抄書)'가 이에 해당할 것 같다.
이처럼 정보를 나만의 것으로 소화시키고 정리하는 행위는 지식인들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지식인뿐만 아니라 자수성가형 부자들도 이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식이 부로 직결되는 시대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는 정보를 얻는 행위만큼이나 정보를 선별하고 정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책을 읽어도 정리하지 않으면 월급이 통장을 스쳐가듯 사라지니 말이다.
나도 몇 년 전부터 정보를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만의 비망록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를 자타공인 비범한 사람이라 말하기는 무리가 있기에 이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다만 비망록을 만들고 싶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공유를 해본다.
먼저 책을 읽으면 무조건 네이버 블로그에 정리를 한다. 나의 생각은 간단하게 한줄평과 평점으로만 정리한다. 정리의 대부분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필사하는 데 있다.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부분, 기존에 몰랐거나 다르게 생각했던 부분을 위주로 정리를 한다. 이 글을 쓰는 현재 기준으로 1,200권 정도의 책을 정리한 것 같다.
책 이외의 정보는 대부분 노션(Notion)으로 정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때그때 다른 분류법으로 수많은 정보를 정리하곤 했는데, 티아고 프로테의 <Building a Second Brain>을 읽고 나서부터 PARA 분류법을 적용하고 있다. PARA는 Project, Areas, Resourece, Archives의 초두어로 구성된 단어다. 각각이 의미하는 바는 아래와 같다.
1) Project: 일과 생활 전반에서 단기적으로 필요한 정보
2) Area: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와 관련된 정보
3) Resource: 미래에 도움이 될만한 주제나 관심사 관련 정보
4) Archives: 1~3번 정보 중에서 이미 완료되었거나 더 이상 관심이 없는 정보
필자의 노션앱
정보를 습득할 때마다 바로바로 PARA로 정리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경우 !!!와 ??? 카테고리를 추가해서 만들었다. !!!는 갑자기 떠오르는 아이디어, 그리고 ???는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모르는 정보다. !!!와 ???에 넣은 정보는 매주 한 번씩 PARA에 맞추어 정리를 하고 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나라에는 <세컨드 브레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특정 시간에 해야 하는 일들에 관한 정리다. 일정은 구글과 네이버 캘린더에 저장을 해두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예약문자를 사용하는 편이다.미래의 나를 타인처럼 생각하고 예약문자를 보낸다. "무엇을 해주세요"와 같은 메시지를 그것을 해야 하는 날과 시간에 예약문자로 보내는 것이다.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완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미래 어느 시점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불필요하게 뇌에서 그것을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에너지를 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예약문자를 보냄으로써 이러한 불필요한 에너지소모를 없애려고 한다.
이 밖에도 정보를 선별하고 정리하는 소소한 방법이 있으나 여기에 다 적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다. 다만 위에서 말한 방법이 큰 틀에서는 대부분이다. 비범한 여러분의 비망록 작성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