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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n 03. 2022

그건 원래 그런 거야

흄의 기요틴(Hume's Guillotine)

내가 패션회사에 입사했을 초반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네가 패션(업)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그리고 공식처럼 다음의 말이 이어졌다.


그건 원래 그런 거야(혹은 내가 해봤는데 안돼)


이 답변은 상대방에게 반박의 여지를 주지 않는 무적의 논리다. 마치 어렸을 적에 유치하게 '반사'를 주고받다가 결국에는 궁극의 '무지개 반사'를 하는 것 혹은 끝말잇기를 하다가 '북녘'과 같은 한방 단어를 쓰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우리 회사에서만 벌어졌던 일은 아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다수가 격한 공감을 한다. 특히나 사회초년생분들이.


몇 백 년 전에도 이런 이야기는 공감대를 샀을 것이다. 약 300년 전에 이에 대해 이야기한 철학자가 있었으니 말이다. 바로 데이비드 흄이다.


흄의 기요틴(Hume's Guillotine)
: 오늘날 어떠한 것이 특정한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해도(is) 그것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ought)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렇게 is와 ought의 연결관계를 싹둑 자른다고 해서 흄의 기요틴이라고 불린다.

- Laszlo Bock의 <Work Rules> 참조 -
* 본인이 번역


흄의 기요틴이 말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렇게 해왔다(is)"는 사실은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ought)"는 가치 판단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보면 "흑인은 노예생활을 해왔다(is)"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흑인은 노예생활을 해야 한다(ought)"는 터무니없는 가치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는 앞서 말한 직장생활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


회사생활은 대리 때까지 배운 걸 갖고 평생 하는 것 같아


내가 리스펙 하는 선배가 이 말을 했을 때 그는 그것을 긍정하는 것이 아닌 자기반성적 맥락으로 이야기를 했다. 이러한 틀을 탈피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자기반성 없이 이처럼 '사회생활 초반 5-6년의 경험(is)'을 통해 '이렇게 해야 한다(ought)'는 틀을 만들고 그 속에 갇혀있는 것 같다. 혹자는 이것을 노하우 혹은 짬밥이라고 부르며 긍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이 높은 확률로 맞았던 시기도 있었을 것이다. 숙련도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던 시대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알다시피 지금의 시대는 그렇지 않다. Is와 ought를 흄의 기요틴으로 끊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이다. 그리고 이 기요틴은 지금까지의 지식을 잊는 행위 즉 '언런(unlearn)'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 모든 문제는 못으로 보일 것이다
- 에이브러햄 매슬로우 -


매슬로우의 말처럼 언런이 되지 않는 사람은 본인이 사회생활 초반에 만든 망치를 들고 평생을 못만 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망치를 내려놓고 세상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흄의 기요틴으로 is와 ought를 잘라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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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Daniel Lincol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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