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리 마커스는 본인의 저서 <Kluge(클루지)>에서 행복에 대해 진화론적 관점에서 서술했다. 나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인간이 행복하도록 진화했다면 우리는 1,000년 전의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다. 의료, 냉난방, 교통 등 객관적 여건의 발전과 상관없이 주관적 행복도는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더 낮아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강도가 커지면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행복이 삶의 목표였을 때 보다 행복에 대해서 덜 생각하는 지금이 전반적인 행복도가 높은 것 같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개인적인 경험은 아닐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연구결과 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목표를 달성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어 결과적으로 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 Neurosciencenews, <Is the Pursuit of Happiness Making You Unhappy?>, March 13, 2018 - * 본인이 직접 번역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냥 단순히 행복을 생각하지 않으면 될까? 물론 이도 도움이 될테지만 더 자세한 답을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이다.
그는 '삶의 의미'라는 답을 주고 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삶의 의미를 추구하면 삶은 더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행복은 비트코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트코인은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즉 인간이 삶의 의미를 추구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 행복이듯이 말이다. 물론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사람들은 비트코인 그 자체가 목적일 것이다. 다만 그들이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해서는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존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련의 작업들을 해서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기여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비트코인 채굴 과정. 사진 출처: Javapoint.com
인간의 삶의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각자의 삶의 의미는 세부적으로는 다르겠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나'에서 출발해서 내가 속한 사회, 국가, 인류, 최종적으로는 세계라는 네트워크에 기여를 하는 것일 거다. 누군가는 예술을 통해, 누군가는 기술을 통해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환경보호를 통해 말이다. 즉 이 모든 것은 결론적으로 더 나은 인간의 삶과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데 '기여'하는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달성했을 때 우리에게는 '행복'이라는 이름의 '비트코인'이 주어지는 것이다.
가치가 불안정하지도 않고 희소하지 않아서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완벽한 비트코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