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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n 27. 2023

'인문학'이 자기 계발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스티브 잡스의 연설이지 않을까 싶다.


사진 출처: wired.com


애플의 DNA에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술이 교양을 만났을 때, 그리고 인문학을 만났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 스티브 잡스 -
*본인이 의역



그전까지 인문학에 대한 인식은 대충 이러하지 않았나 싶다. '공부하면 좋지만 실생활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학문', '여유가 있는 사람이 공부하는 학문' 등등. 쉽게 말해 삶의 우선순위에서 상당히 밀려있는 학문이었다. 대학에서도 인문학 관련 전공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고, 인문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연설 그리고 애플의 혁신은 '인문학'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일명 21세기의 자기 계발로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인문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Humanities'와 'Liberal Arts'이다.


먼저 'Humanities'의 라틴어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 '문화 혹은 정제된'이라는 뜻을 마주하게 된다. 쉽게 말해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아닌 '인간적인 무언가'를 의미한다.


'Liberal Arts'의 라틴어 어원은 각각 '자유(Liberales)'와 '기술 혹은 예술(Artes)'을 의미한다. 즉,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기술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정리해 보면 잡스가 말한 '인문학'이란 결국 '인간적인 무언가'를 통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기술'에 닿을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즉 우리 대부분이 꿈꾸는 것이 사실은 인문학인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을 강조하면서 혁신을 일으키자, 수많은 기업이 뒤늦게 '인문학 경영'을 표방하고 서점에는 '인문학'을 표방하는 자기 계발서가 넘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인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아니 인문학적 역량이 높아지면 무엇이 좋아지는지 생각해 보자. 그 힌트는 공자가 말한 '6예'에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군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공부를 '6예(藝)'라 했습니다. 서양도 똑같습니다. 서양은 '자유7교과'라 해서, 문법/수사학/논리학/산술/기하학/처문학/음악이 있습니다. 이른바 자유교양(liberal arts)입니다. 제가 있는 대학도 자유교양을 지향하고 있어 문학부/음악학부/인간과학부로 나눠 교양교육에 필요한 일곱 과목을 분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그리스/로마에서 유래한 자유7교과보다도 공자의 6예가 교양교육으로서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6예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가리킵니다.

- 우치다 다쓰루, <교사를 춤추게 하라>, 민들레, 2012. 중 -


우치다 다쓰루도 말했지만 6예에서 현재도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읽고 쓰고 셈하기'에 해당하는 서(書)와 수(數)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강조했고, 인문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어야 할 것은 앞의 네 가지 예/악/사/어에 있다. 이 모두 소통하기 힘든 것과의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禮)는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이 조상의 영혼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더 이상 소통할 수 없는 죽은 사람과의 소통이다.


악(樂)은 음악이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지나간 음을 기억하면서 현재음을 느끼고 다가올 음을 예상하는 것이 음악이다. 테크노 음악을 듣다 보면 그 누구라도 비트가 빨라지다 보면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할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음악은 시간과의 소통이다.


사(射)는 활쏘기, 어(御)는 말(馬)다루기다. 각각 신체의 일부분, 그리고 동물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이 소통이 잘 이루어지면 과녁 정중앙에 화살이 꽂히게 된다. 과녁은 소통의 결과를 의미한다.


이처럼 쉽게 소통할 수 없는 것과의 소통능력을 기르는 것이 6예이고, 이것이 인문학적 소양이 아닐까 생각한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은 그것이 '프로그램 언어'이건 인간이 사용하는 '자연어'이건 간에 언어로서만 작동한다는 단점(?)이 있다. 즉 6예가 말하는 '영혼', '시간', '말', '세포'와의 소통을 시도하지도, 시도할 수도 없는 것이다. 먼 훗날에는 이도 가능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근 시일 내에 그것이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인문학', 그리고 우리가 막연하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인문학' 모두 소통불가해 보이는 것과의 소통능력을 기르는 학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21세기 자기 계발이지 않을까?



P.S. 인문학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는 분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동기로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인문학에 관심이 생기면 좋은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자기 계발이 원래 인문학이 아닐까?



사진: UnsplashLachlan Demp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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