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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n 29. 2023

다독가를 만나면 왜 실망스러울까?


최근 게스트로 참여한 독서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랜딩'과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이었다. 대부분의 참여자는 브랜딩 및 마케팅과 관련 없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나의 본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굳이 나의 직업을 말하면 참여자들이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질까 봐 그냥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참여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보다 브랜딩 관련 책을 많이 읽은 분은 없을 것 같기에 전체적으로 정리해서 말씀드릴게요.
 


꽤나 자신 있는 말투였으나 이어지는 말은 듣기 민망할 정도로 틀린 정보 투성이었다. 하지만 모든 참여자는 그의 '다독가'라는 권위에 쉽게 맞서지 못하는 듯 보였다. 불편하기는 했지만 너무나 심각하다고 보이는 오류를 내가 나서서 정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다독가라고 칭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대부분 이렇게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일단 '책을 많이 읽었다'라는 것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닌 상대적인 개념이기에 당당하게 스스로를 다독가라고 칭하면 첫 단추부터 잘못 꾀는 것이다. 평균보다 많이 읽었다는 그나마 괜찮지만 '누구보다' 혹은 '절대적으로'와 같은 단어가 함께 한다면 일단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의 논리라 보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두 번째로 다독가를 칭하는 사람이 이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그것을 '지성'의 근거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본인은 다독가이기 때문에 '똑똑하다' 혹은 '나의 주장이 옳다'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독은 뛰어난 지성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다독을 이야기한다면 더욱 혹독하게 자신의 지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1년 동안 매일 하루 10시간 이상씩 영어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영어시험 점수가 높아야만 다. 즉 공부의 양이 영어실력의 근거가 되기보다는 어실력이 좋아야만 하는 당위가 되는 것이다. 다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스스로 책을 많이 읽는 축에 속한다는 뉘앙스의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글은 나의 주장이 옳음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더 정밀한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다독가를 칭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실망감은 나도 혹시 저런 모습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되곤 한다.


부디 다음에는 존경할만한 다독가를 꼭 만났으면 한다. 일단 나부터 잘해야겠지만.


<가벼운 글을 좋아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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