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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l 17. 2023

같은 말, 다른 말로(末路)

* 인물을 특정하지 않기 위해 일부 각색하였습니다.


나의 부캐명인 '캡선생'의 로고를 잘 보면 아래에 긴 글씨가 쓰여있다. '우리 모두 더 나은 실수를 합시다'라는 의미의 'Let's make better mistakes'이다. 탄생비화를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캡선생 로고 


5-6년 전에 캡선생이라는 부캐명을 달고 처음으로 유료 모임을 진행하게 되었다. 무료 강의 및 모임진행은 자주 했었기에 별 부담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막상 당일이 되자 심한 부담감으로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몇만 원을 내고 오는 모임인데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사람들이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 등등. 다양한 걱정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는데 누군가 갑자기 말을 건네왔다. 무의식이었다. '처음인데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니? 그냥 실수하면서 더 나아지는 거야'라고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온 것이다.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모임을 진행하면서도 참가자들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처음이니 실수할 수 있으나 동일한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더 나은 실수를 하겠다고'말이다. 덕분에 첫 모임을 자신 있게 진행할 수 있었고 참여자의 만족도 또한 높았다. 기대를 뛰어넘는 성공적인 첫 유료 모임이었다. 그 후로 나에게 '더 나은 실수'는 하나의 부적이었다. 용기 있게 새로운 시도를 하게 도와주는 부적.


나만의 경험으로 깨달은 말이라고 생각해서 캡선생 로고 밑에 태그라인으로 당당하게 적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거기서 거기라던가. 꽤나 많은 기업이 비슷한 말을 슬로건으로 쓰고 있었고,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로 유명한 사무엘 베케트는 하나의 기도문 형식으로(mantra) 더 나은 실패를 하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은 아닐지라도 삶에 큰 도움을 주는 말이었기에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있다. 특히나 완벽주의 때문에 쉽사리 첫걸음을 떼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나의 경험까지 곁들여서 자세히 이야기를 했다. 


'더 나은 실수를 하자'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새로운 일에 도전해서 성공한 지인들의 숫자가 하나둘씩 늘어갔다. 운동선수를 은퇴하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서 성공한 사업가. 유튜브를 하고 싶지만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다가 용기를 얻어 유튜브에 도전하여 소수의 강력한 팬덤을 확보한 초보 유튜버. 다양한 모임을 참여자로서만 즐기다가 새롭게 진행자의 길을 걷게 된 강사 등등. 타인의 성공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는 보람감이 부풀어가던 차에 한 분이 나에게 조언을 구해왔다. 오랫동안 글을 써왔는데 책을 용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분의 글은 이미 충분히 훌륭했다. 걱정 없이 책을 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책을 쓰라고 말했다. 그러자 완벽한 책을 낼 자신이 없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첫 책부터 완벽하게 쓰는 작가가 어디 있겠냐", "오히려 첫 책이 가장 좋은 책이면 그 또한 불행이지 않겠냐"라고 나의 생각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늘 그러하듯 '더 나은 실수'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몇 개월이 흘렀을까. 어느 날 그분의 SNS에서 나를 저격하는 듯한 글을 보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작가를 너무 가볍게 본다', '완벽하지 않은 글을 쓰는 게 괜찮다고 생각하느냐'와 같은 내용이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기에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앞에서는 긍정하고 뒤에서는 욕하는 그의 태도였다. 더불어 그 조언 후에 2년가량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기존 작가들의 수준 낮음을 욕하면서 정작 본인의 책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떻게 보면 그가 되고자 했던 것은 '불완전한 작가'가 아닌 '완전한 작가의 가능성을 품은 영원한 작가지망생'이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말이 다른 말로(末路)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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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Alice Yama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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