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선생 Jul 12. 2023

나는 누구인가?


환자의 의식 수준이 점점 낮아지고 있을 때 그 수준을 판단하기 위해 병원에서는 '소재식(所在識)' 검사라는 것을 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한다.


(1) "여기는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은 공간적으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보는 질문입니다.

(2)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은, 75억 인간이 살고 있는 인간 사회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알아보는 검사입니다.

(3) "지금은 언제입니까?"라는 질문은, 시간의 축 속에서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시간의 위치를 알아보는 검사입니다.

-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청어람미디어, 2001. 중 -


요약하면 드넓은 우주의 시공간에 찍힌 좌표로서 당신의 정체성을 묻는 검사다.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있을 때의 나와,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외국에서의 나는 또 다르다. 그렇기에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이 조금 더 정확해지려면 '언제'와 '어디'가 함께 해야한다.


하지만 시공간이 정해진다해도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나 모든 것이 맞고 동시에 모든 것이 틀릴 수 있는 다원화 사회에서는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정의내리기 매우 힘들다. 이른바 정체성 대혼란의 시기다. 이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졸데 카림의 생각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카림은 민족적 동질 사회에서 나타나는 개인주의를 1세대 개인주의(개인은 민족 정체성이라는 온전한 정체성을 갖는다.)로 부른다. 1960년대 이후 등장한 정체성 정치의 개인주의는 2세대 개인주의(개인은 여성, 장애인 등의 차이 나는 정체성을 갖는다.)이며 그리고 다원화 사회에서 나타나는 불안정한 정체성의 개인주의는 3세대 개인주의다.(개인은 우연성의 감각 속에서 정체성을 끊임없이 변화되는 것으로 경험한다.) 이러한 세 가지 개인주의는 시대가 바뀌면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공존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정체성 물음을 만들어 낸다.

- 박동수, <철학 독서모임>, 민음사, 2022 중 -


나를 기준으로 위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1세대 개인주의는 '한국인으로서의 나', 2세대 개인주의는 '한국 남성으로서의 나', 3세대 개인주의는 '그 누구도 규정할 수 없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이다.


3세대 개인주의자에게는 "당신은 누구냐?"라는 질문은 틀린 질문이다. "당신은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가 옳은 질문이 된다. 즉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개인주의인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무엇도 될 수 없는 개인주의다. 항아리에 담으면 항아리 모양이 되고, 컵에 담으면 컵 모양이 되는 물과 같다. 어떠한 형태도 될 수 있지만 어떠한 형태도 없는 것이다. 다만 도가에서 말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의 경지에 올랐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 대혼란의 시기에 각광받는 것이 있다. 바로 브랜드다. 브랜드는 명확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다. 아니 그래야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된다. 무색무취의 브랜드를 누가 좋아하겠는가(물론 소수의 취향은 존중한다). 그렇기에 정체성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점점 더 브랜드에 빠지고 있는 것 같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곧 나의 정체성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지인 중에 아디다스의 광팬이 있었다. 어찌나 아디다스를 좋아하는지 그에게 나이키는 용납못할 브랜드였다. 심지어 같이 운동하는 사람 중에 나이키를 입은 사람이 있으면 불편하다고 했다. 그에게 아디다스는 개인 정체성을 넘어 집단의 정체성을 의미했다.


너무 극단적인 사례라고? 맞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브랜드, 더 정확히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브랜드를 갖고 있다. 극성 애플 유저에게 공짜로 삼성 핸드폰을 준다한들 그들이 쓰겠는가. 자신의 정체셍에 위배되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공짜라도 쓰지 않을 것이다. 당근마켓에 올릴 확률 90%다.(99%로 쓰려다 10%의 여지를 두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이러한 정체성 대혼란의 시기를 기회로 본 것인지 과거와 달리 브랜드의 숫자도 표방하는 가치도 다종다양해졌다. 누구나에게 나만을 위한 브랜드가 있는 세상이 되었다.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파타고니아', 승리와 도전정신이 강한 사람은 '나이키', 명상이나 요가를 즐겨하는 사람은 '룰루레몬'처럼 말이다. 3세대 개인주의자가 물이라면 브랜드는 용기가 되었다. 그리고 물은 끊임없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용기에 몸을 던지고 있다.


브랜드 뿐만이 아니다. 자신만만한 어투로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게 되었다.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TV와 유튜브 등의 매체에 나와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2016년에는 그 누구보다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인의 지지를 얻었다.


언제나 그래왔다. 혼란은 질서를 원했고, 질서는 혼란을 원했다. 그래서 지금의 정체성 대혼란의 시기는 정체성의 대질서 시기를 불러오지 않을까 싶다. 기대와 우려가 섞인 미래다.


그래서 제목 그대로 '나는 누구인가?'. '2023년 7월 12일 대한민국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


<짧은 글을 좋아한다면 아래를 클릭 해주세요>


https://www.threads.net/@kap_writing





매거진의 이전글 딱 15분만 유명해질 수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