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동불량 모델: P-60

by 카폐인

그는 오래된 사유 시스템을 장착한 낡은 인간형 모델이었다. 고장 난 모델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세 가지의 대사를 외치고 있었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

-글로는 돈 얼마 못 벌어, 절대 성공 못 해.

-젊은 여자가 글을 쓴다고 뭐 얼마나 쓰겠어.


머리가 희끗한 남성형 모델의 뒷목에는 부분적으로 지워진 검은 바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세 가지 대사를 반복하며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축축한 흙 위에 서 있었다.


식별 장비를 바코드에 가져다 대자

P-60이라는 모델명이 떴다.

그의 업데이트는 1990년에 멈춰 있었다.


나는 고장 난 모델의 폐기 유무를 결정하는 정비감사관으로서 그에 대한 진단을 내렸다.


[오류 발견]


1. 구시대적 남성 우월주의 데이터가 방대하게 쌓여있음.


2. 시스템 내 편견 필터가 약 20년 넘게 고장 난 채 방치된 것으로 보임.


3. 지워진 기록을 제외하고 남은 최근 10년의 기록으로 보아, ‘여성’으로 보이는 인간이나 모델에게 자주 오류성 언어를 출력함.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줄 수 있음)


보고서앱에 오류 항목을 입력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여성이 귀를 막으며 다가왔다.


“저기, 이것 좀 꺼주시면 안 돼요? 너무 시끄러운데.”

“아, 죄송합니다.”


기록에만 집중한 나머지 P-60이 여전히 음성을 출력 중인 줄 몰랐다. 나는 고개를 숙여 사과한 뒤, 패드 화면에 떠 있는 모델 정보 옆 ‘작동 중지’ 버튼을 눌렀다.


-젊은 여자가 글 쓴다고 뭐 얼마….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며 그의 입이 닫혔다.

미약하게 빛나던 안광도 꺼졌다. 그의 언어는 더 이상 어떤 정보도 전달하지 않았다.


그가 조용해지자, 얼굴을 찡그리고 서 있던 여성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오늘도 폐기여부를 판단해야 할 모델이 10건 이상 남아 있었으니까. 그래서 신속히 결론을 내렸다.


[폐기 여부: Y]


모델명: P-60

생산연월일: 1985년 4월 3일

이유: 기능적 퇴물, 생산성 없음, 존재 근거 없음, 미래 적응 불가.

이상, 정비감사관 직권에 따라 해당 객체의 지속 운용 불가 판정합니다.


>>>>>폐기 승인 요청 전송

<<<<<해당 객체 폐기 승인


그날 이후, P-60 모델은 폐기 리스트에 등록되었고 재활용되지 않았다.


뒤이어 출시된 신형 모델들은 성인지 감수성과 자의식 과잉 오류율을 낮추기 위해 그의 말버릇을 포함한 수십 개의 발화패턴이 금지어목록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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