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감이라는 오류

by 카폐인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심해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누구도 말 한 적 없지만, 나는 이 말을 마음에 품고 산다. 인간은 저마다 ‘감정’이라는 바다를 지니고 있다. 그 바다에 필요한 무언가를 찾으러 뛰어들면, 정작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되고, 애써 건져 올린 무언가는 엉뚱한 찌꺼기 거나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상해 있다. 혹은, 애초에 꺼내지 말았어야 할 것일지도 모른다.


서비스직은 그런 감정의 심해를 매일 노 젓듯 건드리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인간을 상대하는 일’은, 아예 수중 깊이 잠수하는 일에 가깝다.


‘진작에 그만둘걸.’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후회한다. 두 달 만에 그만둔 김밥집 알바가 그리울 줄은 몰랐다.


감정에러가 생긴 로봇을 고치는 일.


듣기엔 그럴싸하지만, 이건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를 녹이는 일이다.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과로로 입원했으니, 말 다 한 거지. 두 달 전부터 내 휴대폰 배경화면에는 사직서 파일이 깔려있다. 너무나 하기 싫은 일이지만, 누구를 탓하랴.


그래도 입원해서 휴가 아닌 휴가를 얻게 되었으니 그걸로 나름 만족한다. 오래간만에 주어진 이 여유로움을 어떻게 감당할까 한참 동안 생각하다 결심했다.


나는 지금부터 글을 쓸 것이다. 안 그래도 원래 꿈이 에세이 작가였지만, 현실에 찌든 탓에 그저 마음 한편에 미뤄두고만 살았다.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날려버릴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지난 두 달 동안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진심을 담아 최대한 생생하게 기록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의문이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휴머노이드는 고치면서 왜 시간여행은 아직도 못할까. 이건, 진짜 말이 안 되잖아?


“말이 됩니다.”

“넵.”


나는 군말 없이 화면에 띄워진 모델 옆 칸에 X표시를 했다. 이러다간 뒤통수에 구멍 나겠어. 뒤에서 팔짱을 낀 채 내 머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인간의 이름은 ‘김단오.’ 직속 선배이자 부서 내 유일한 동갑이다. 항상 흰 셔츠에 검은 넥타이, 검은 뿔테 안경을 고수하는 그를 처음 봤을 때, 상조 회사 직원인 줄 알았다.


두 달 동안 같이 일해본 결과, 김단오는 유연함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FM형 인간이었다. (처음엔 휴머노이드인 줄 알았다.) 신입 환영회 때, 왜 그 잘생긴 직원(본인의 요청)이 ‘김단오, 극혐.’이라고 유치하게 속삭였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나저나 도대체 언제까지 폐기 유무를 체크해야 하는 걸까.


“오늘은 250번까지 하면 됩니다.”


그는 독심술사인가? 아니면 몰래 내 머릿속에 칩이라도 심은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매번 내 속마음에 대한 대답을 적절한 타이밍에 하느냔 말이야. 저 인간 혹시 상급 관리대상 휴머노이드가 아닐까?

“우리가 사람이니까 이렇게 하는 겁니다.”

“네, 네?”

“아무리 기술이 발전되었어도, AI가 한 번씩 놓치는 부분이 생기더군요. 더구나, 이를 고치는데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듭니다. 사실 저희같이 작은 회사는 감당하기가 좀 버거워요. 그래서 고장이나 불량품 신고가 들어온 휴머노이드들의 체크 여부는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겁니다. 정확하게.”


네, 알겠습니다. 한 번에 정확하게.

다시 수정할 일 없도록.


나는 ‘감정 에러’ 혹은 ‘작동 불량’이라고 빨간 글자로 표시되어 있는 모델들의 사양과 접수 사유, 원인 등을 살펴보면서 O, X, 표시를 했다.


“휴-. 여기, 다 했습니다.”


나는 제법 뿌듯해하며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 서 있는 단오에게 패드를 건넸다. 단오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고쳐 올린 뒤 내가 체크한 것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집중한다고 고생한 어깨와 목을 위해 기지개를 쭈욱 켰다.


“이 모델은 왜 보류입니까?”


하마터면 오른쪽 어깨를 삘 뻔했다. 단오의 단호한 목소리에, 침착하게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면 최소 물리치료이었을 거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단오에게 물었다.


“어느 모델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이 모델 말입니다. P-56W. 왜 세모로 표시했죠? 이건 직계가족인 따님이 교체 신청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 그게…”


그렇다. 수많은 엑스들 속 내가 세모라고 판단한 몇 안 되는 휴머노이드 P-56W.


뿔테에 가려진 날카로운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며 나는 머리를 굴렸다. 명확한 근거에 의해 대답을 해야 한다. 이럴 때 만능 비서인 ‘하트’에게 물어보면 좋을 텐데.


하트야, 지금 김단오가 내게 논리 정연한 답을 요구하고 있어. 법과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중년 여성 휴머노이드가 왜 보류인지 육하원칙에 따라 500자 내로 서술해 줘!


“직감입니다.”


이런, 망했다. 표정관리 하나 못한 내가 결국 가장 비논리적인 대답을 뱉었다. 나는 시선을 들어 단오를 바라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뿔테 너머의 차가운 눈빛이 내 머릿속 깊숙한 회로까지 꿰뚫는 것 같았다. 사내에선 이미 유명했다. 단오의 오류 레이더망에 걸리면 누구든 예외 없이 아작 난다는 사실을 입사 첫날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그날이 오늘인가 보다.

사직서를 전송할 날이.


그러나 나는 휴머노이드의 폐기 유무를 판단하는 정비감사관 사자-05.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장렬히 전사하더라도, 맡은 바 임무는 다하고 나서여야 한다. 내게 종신계약을 종용했던, 그 지긋지긋한 대표의 말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천장 스피커에서 비정한 톤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사자-05. 대표님 호출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 역시, 대표의 타이밍은 악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