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감정은 유한합니다.
휴머노이드의 감정, 리페어하시겠습니까?
고장난 감정을 수리하는 곳, 하트랩.
“이 멘트 수정할까?”
“어떤 멘트요?”
영혼 없는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뽀글 머리 승우가 역시나 기운 없이 대답했다. 옆에서 같이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던 대표가 미간을 구기며 쯧, 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 저러면 길어지는데...
대표의 부름에 부리나케 달려왔건만, 문 앞에 십 분째 서 있음에도 대표는 내 존재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듯했다.
“마지막 멘트 말이야. 아니다, 아예 회사 이름을 바꿀까? ‘하트랩’ 유치하지 않아? 대학원 랩실 같은 느낌 내고 싶었는데.”
“미친, 대학원이라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승우의 얼굴이 책상에 쳐 박히고 말았다. 뒤통수를 맞은 승우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하 씨, 매번 머리만 때려.”
“뭐?”
“다른 데도 좀 때리라고요...”
그 둘을 보며 나는 입 안으로만 작게 숨을 내쉬었다. 참자. 또 참자.
큽. 흠. 일부러 기침을 해봐도, 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함께 분홍 후드티 안으로 고개를 파묻은 승우와 눈이 마주쳤다. 곧이어 대표도 새빨갛게 칠한 입술을 활짝 벌리며 나를 향해 웃었다.
“어머, 왔어?”
“정비감사관 사자-05 인사드립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대표는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는 승우에게 “일단 마무리 지어봐. 자정에 다시 검토할 테니까.”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 뒤,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언제 봐도, 입꼬리만 올라간 저 인위적인 미소는 적응이 안 된다.
나는 그녀가 먼저 말을 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며 생각했다. 이미 십 분 더 연장된 내 근무 시간의 연장수당은 못 받겠지. 작은 회사라 겨우 버티고 있다고 야근 수당도 어쩌다 한 번씩 주는 마당에… 오늘도 역시 칼퇴는 안되려나.
“정말 미안. 온 지도 몰랐네. 새 광고 문구 신경 쓰느라 그만.”
“괜찮습니다.”
“그런데, 우리끼리 있을 땐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는 게 어떨까? 백사자 직원?”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작게 고개를 끄덕인 대표가 왼쪽 손목에 박혀 있는 자주색 버튼을 눌러 공중에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자주색 아니고 마젠타.”
대표도 내 머릿속을 스캔하는 게 틀림없다. 신체의 절반이 기계로 이루어진 ‘하프휴먼’인 그녀는 사소한 거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특히 진짜 사람의 마음을 작지만 예리하게 찔렀다. 방금처럼, 내가 항상 자주색이라고 말하는 회사의 로고 색을 대표는 색상 이름으로 정확히 정정해 주었다.
자신의 전 재산으로 설립한 이 회사에 나 같은 직원들마저도 자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우리는 직원이고 당신은 대표야. 그저 당신에게 노예계약을 강요당한 불쌍한 월급쟁이일 뿐이라고. 입사할 때, 그녀가 내민 계약서에는 별거 없었다. 연봉 두 배 인상, 의료 혜택, 20년 종신계약. 계약 중 사직서, 사표, 무단결근 등 퇴사관련된 모든 행동 금지.
그 계약서에는 나의 지문, 홍채 스캔, 그리고 혈액 소량까지 등록되어있다. 입사 첫날 내가 서명한 건 계약서가 아니라 내 몸이었다. 그것은 내 인생 최악의 선택 중 하나였다. 아픈 걸 고쳐주겠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서는.
허공에 띄워진 중년 여성 휴머노이드의 형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대표가 얕은 한숨을 내뱉더니, 다시 마젠타 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모델 P-56W. 그렇다면 가정 1차 방문 오늘이네?”
“네, 그렇습니다.”
“시간 꽤 오래 걸릴 텐데. 일단 반나절은 관찰만 해야 할 거야. 이럴 때는 특히 ‘엄마’가 제일 곤란하니까.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번 방문해야 할 수도 있어.”
알고 있었다. 직계가족이 신청한 휴머노이드의 존폐를 결정하는 일은 감정적으로 정말 지치는 작업이었다. 차라리 밤샘작업 중 하나인 데이터 교체가 편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중요하고 무거운 일을 맡은 우리 백사자 신입. 기운 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부른 거야.”
“네?”
내가 되묻자, 대표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 사례에는 우리 신입이가 제일 적.합.할.것 같아서 불렀어. 할 수 있지?”
어이가 없었다. 멍하니 내가 쳐다보고 있자 대표가 날 지그시 쳐다보더니 “귀찮지만, 잘 해내 봐. “라고싱긋 웃으며 이 작고 어두운 방을 나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하품을 크게 하던 승우가 기지개를 켜며말했다.
“해당 모델 엄마의 알고리즘 정리해 드릴까요?”
덤덤하고 낮은 목소리에, 전원이 끊긴 듯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 그러면 좋죠.”
역시나, 방구석 알고리즘 폐인 소승우.
그는 햇빛 하나 보지 못한 창백한 피부에, 수분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쩍 마른 체격을 가졌다. 이따금 이렇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치 좀비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런데 자료를 정리할수록 승우의 미간은 점점 깊게구겨졌고, 때때로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거 좀 그런데요.”
“뭐가요?”
승우가 마우스 휠을 내리며 잠시 멈칫했다.
“자료상으로 보니까, 진짜 엄마에 대한 기억을 지나치게 많이 탑재했네요. 이 정도면, 거의 실제 엄마랑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세부적인데요?”
책상을 짚은 손에 땀이 났다. 지나치게 세밀한 데이터는 휴머노이드의 감정에러를 유발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었다.
승우가 다른 자료를 보여주며 덧붙였다. 자료 속에는 모델로 추정되는 엄마와 환희 웃고 있는 의뢰인이 있었다.
“의뢰인이 딸이라고 했죠? 아무래도 그분은 진짜 엄마와 동일한 수준의 감정을 원한 것 같아요. 진짜 문제는, 이게 결국 감정 과부하를 일으켜서 정작 휴머노이드가 더 이상 '엄마'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거죠. “
나는 자료를 살펴볼수록 직감했다.
이 일, 생각보다 더 버거울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