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좀 어렵겠습니다.”
냉정한 내 말투에 초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구매자가 폐기해 달라는데, 그게 왜 문제죠?”
초빈은 어딘지 모르게 초조한 듯 전자담배를 손 안에서 쥐었다 폈다.
“이건 닳거나 고장 난 게 아니니까요. 애초에 ‘치매’란 단어는 휴머노이드에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치매는 생물학적 뇌 기능의 퇴화, 즉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병리적 증상이니까요.”
나는 인터넷으로 외운 사전적 설명을 붙여가며 연차가 꽤 쌓인 전문가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적당한 곳에서 말을 끊고 팔짱을 끼며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모델 P-56W는 오히려 너무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기억 외에 다른 감정을 처리할 여유 공간이 없어진 상태죠. 그리고―.”
“그리고요?”
초빈이 재킷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으며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나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용량을 차지하고 있는 기억이 고등학생 때의 3년,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의 3년, 이 두 가지가 맞나요?”
초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자신만만했던 그녀의 표정은 어느새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산책하기 좋은 날임을 알려주었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고자 초빈에게 말했다.
“잠시 걸으실까요?”
나는 손을 앞으로 뻗으며 초빈의 집 방향으로 안내했다. 초빈이 내 얼굴과 집으로 향하는 길을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으로 향하며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엄마, 잠시 쉬어.”
초빈이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이 P-56W를 일시 정지시키는 명령어라는 걸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느린 걸음 속에서 초빈은 말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설명하기 편했다.
“제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초빈 씨가 입력한 두 개의 일상 루틴을 동시에 실행하고 있는 거죠. 지금 P-56W는 딸을 ‘고등학생’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십 년 후 헤어질 존재’로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감정 회로가 과부하 상태예요.”
내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초빈이 입을 열었다.
“그럼, 고치는 게 낫다는 거예요?”
“네. 잠시 후 수리 기사가 오면 다시 안내하겠지만, 현재 해당 모델은 정보를 해석하는 데 단순한 혼란만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초빈씨가 성인인 걸 알면서도 ‘석식 도시락’을 만들어 주는 것 말이죠. 그리고 애초에 큰 문제로 삼았던 ‘아침마다 화장실 문 열었다 닫기’의 반복 행동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초빈의 집 앞에 도착했다. 망설임 없이 대문을 밀고 들어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는 나와 달리 초빈은 계단 아래에서 망설이며 한 발자국조차 쉽게 떼지 못했다.
그때, 손목에 차고 있던 워치가 주황색 불빛을 두 번 깜빡였다. 이건 그 사람이 이미 오류 모델을 만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초빈에게 말했다.
“안 오실 거예요? 기사는 이미 도착했다는데요.”
초빈은 나를 올려다보며 다시 짧게 한숨을 쉬고는, 턱턱거리는 소리를 내며 계단을 무겁게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