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 온갖 비극적인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들린 건 만개한 웃음소리였다. 수리 대상인 휴머노이드와 마주 앉아 박장대소하며 눈물까지 훔치는 정구현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더구나 작업복도 아니고, 후드티 차림이라니. 그의 업무 인식 회로가 어디 고장 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초빈이 부엌으로 쾅쾅대며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은 돌진하는 작은 뿔소 같았다. 나는 조용히 뒤를 따랐다. 발소리에 고개를 돌린 휴머노이드가 초빈을 보고 반갑게 웃었다.
“아이고, 우리 딸 왔어?”
초빈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엄마, 내가 쉬라고 했잖아.”
“우리 딸, 친구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네.”
“엄마, 쉬어!”
초빈이 단호히 명령했지만 ‘엄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신호였다. 주인의 명령을 무시하는 휴머노이드는 위험했다.
“안 그래도 친구들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둘이나 오고.”
갑자기 ‘엄마’가 초빈에게 다가가 얼굴을 살폈다. 그러자 초빈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참, 아침에 약은 먹었니?”
“엄마!”
격앙된 목소리로 초빈이 소리쳤다. 그녀의 눈이 금방이라도 울 듯 떨렸다. ‘엄마’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정구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머리를 툭툭 긁고는 하품을 했다. 그리고 무심한 투로 초빈에게 말했다.
“차라리 요양원에 모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가 말하는 ‘요양원’은 일반적인 의미의 시설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포장된 이름일 뿐이었다. 그곳의 정확한 명칭은 H보관소. 정부와 연계된 이 시설에서는, 오래된 휴머노이드들이 분해되고 필요한 경우 재조립된다.
휴머노이드는 사용된 지 3년이 경과하면 ‘구형 모델’로 분류되며, 자동으로 보관소 대상에 오른다. 그리고 구매자에게 1회 무료 교체 서비스가 제공된다.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신형 모델로.
“이, 이미 폐기 처리 요청을…”
초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정식 요청은 안 하셨잖아요? 그렇죠, 감사관님?”
정구현의 눈동자가 파란 나선을 그리며 반짝였다. 마치 조명이 반사된 것처럼. 누군가는 그걸 단순한 반짝임으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건, 그가 ‘생각 중’ 일 때 나타나는 신호였다.
동시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쏠리자, 압박감이 밀려왔다. 때마침 워치에서 진동이 울렸다. 김단오의 메시지였다.
-모델 P-56W. 특정 시점에 대한 감정 트리거로 인해 장기간 관찰 필요. H보관소 이관 결정 요망.
그는 휴머노이드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었다. 결정은 결국 정비감사관으로 현장에 파견된 내 몫이었다. 안팎으로 압박이 점점 심해졌다.
짧은 침묵 후, 나는 질문을 던졌다.
“초빈 씨, ‘엄마’를 정말 폐기하고 싶나요?”
“네, 감당이 안 돼서요. 생전에도 치매로 고생했는데로봇까지 이러면 어떡해요. 이럴 줄 알았다면 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 차라리 없는 게 나아요.”
초빈의 눈빛엔 망설임이 없었다.
“정말 진심이에요?”
순간 초빈이 내 눈을 피했다. 말보다 빨리 무너지는 건 언제나 시선이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제가 몇 달 전 입원 했을 때, 같은 병실 환자들이 치매를 두 가지로 나누더군요. ‘착한 치매’와 ‘나쁜 치매’. 주변 말을 잘 듣고 조용한 게 착한 치매라면, 욕하고 화내며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나쁜 치매래요.”
“......”
“진짜 엄마는 어땠나요?”
“엄마… 요?”
초빈이 무너지는 걸 애써 붙잡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 살아계실 때의 엄마요. 아시다시피, P-56W는 감정 기반 보조형 모델입니다. 특히 초빈 씨가 고등학생이었던 그 시기말이죠. 그런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건, 애초에 설계상 무리였어요. 그래서 뇌 회로가 ‘과거에 머무는 구조’로 고정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정구현은 ‘엄마’가 건네준 음식을 먹으며 엄지손가락을 들고 극찬했고,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초빈이 그런 ‘엄마’를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초빈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그래야만 모델을 제대로 고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폐기 보류한 첫 휴머노이드를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문제를 무작정 지운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나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지금 초빈 씨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초빈이 거칠게 눈물을 닦았다. 소매가 눈가를 훑고 지나갔고, 피부는 이미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복잡했다.
“그때의 기억을 왜 그렇게 정밀하게 입력했는지.”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알고 싶어요.”
초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을 다문 채, 바닥만 응시했다. 나는 초빈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그녀의 대답이 도망치지 않도록,
시선을 놓지 않은 채.
이젠 판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