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강의 Z

by 카폐인


“왜 그렇게 진심으로 대한 거예요?”

“사자 씨, 그거 집착이에요, 집착.”

“시간 더 지체됐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소승우, 정구현, 김단오.

한 마디씩 하는 저 입들을 순서대로 찰싹 때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난 아직 홍초빈씨처럼 행동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물론 사직서를 들이밀든 폭행을 하든 대표가 퇴사시켜줄 리 없겠지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곧 스피커폰에 쨍한 마젠타색 불이 들어왔다.


“홍초빈 씨 상태는 어때요?”


나는 잔뜩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대표에게 물었다.


“회복실에서 잘 쉬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그리고 그 휴머노이드도 배터리를 아예 빼놔서, 지금은 작동중지 상태예요.”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간단한 수리였어요. 오른팔 하나 부서진 것뿐이니까. ”


수리. 그래, 그녀도 '수리'하면 낫는 하프 휴먼이었다. 그녀의 정체가 밝혀진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폐기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엄마' 휴머노이드 때문에 홍초빈이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낙법인지 본능인지 모를 움직임으로 착지한 덕에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정신을 잃은 초빈과 그녀의 '엄마'인 P-56W 휴머노이드는 곧장 우리 회사로 데려왔다. 문득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 하나. 어쩌면 홍초빈이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녀가 하프휴먼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P-56W는 매뉴얼대로 H보관소로 즉시 이송 조치하겠습니다.”


김단오가 칼로 자르듯 냉정하게 말했다.


“아니.”

“네?”

“일단, 우리 회사에서 보관하도록 하죠.”


대표의 반대는 그야말로 의외였다. 기능상 문제가 있거나 보류된 모델은 무조건 H보관소로 이송하는 것이 이 업계의, 아니 이 회사 내의 암묵적인 룰이었으니까.


“백사자 감사관이 단독으로 전담하면서 관찰 보고서 올릴 거예요. 한 달에 한 번씩.”


대표는 “백사자 감사관, 내 방으로 와요.”라는 짧은 말을 끝으로 대화를 끊었다.


김단오는 잔뜩 못마땅한 얼굴로 뿔테 안경을 집게손가락으로 짧게 올렸다. 차가운 기류가 순식간에 사무실을 감쌌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곧바로 서류를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 속에서, 나는 문득 홍초빈의 집에서 잠시 보았던 정구현의 빛을 담은 듯이 반짝이던 눈동자가 떠올라 그를 빤히 쳐다봤다.


“사자 씨, 왜 그렇게 절 뚫어져라 쳐다봐요?”


자신의 얼굴을 꽃받침 하며 정구현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혹시… 저한테 반했어요? 같은 고전 클리셰는 사양합니다.”


얼마나 인상을 찌푸리는지 잘생긴 미간의 눈썹이 ㅅ자 모양으로 붙을 지경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오리주둥이에 질문을 던졌다.


“구현 씨.”


그는 뭔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혹시, 그 눈동자… 기능도 바꿀 수 있어요?”


“기능이요?”

“네. 예를 들면… 야간 투시라든가, 적외선 모드라든가. 있잖아요, SF 영화처럼.”


정구현은 내 말을 듣자마자 기함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삐죽 나왔던 입술은 더 심하게 튀어나와 이제 진짜 삐진 오리 그 자체였다.


“아니, 사자 씨! 그런 게 가능했으면 제가 지금 이러고 있겠어요?! 진작에 여기 그만두고 나사에 입사했죠!”


그의 항의 아닌 항의에 저절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바로 그때, 내 팔목에 채워진 워치가 진동하며 대표의 메시지를 띄웠다. 우는 이모티콘으로 가득한 글자를 보자, 이번엔 헛웃음이 나왔다.


'학교 시험 기간이라니.'


우리 대표는 회사를 운영하는 동시에 대학생인, 그야말로 '극강의 Z세대'였다. 때때로 대표를 대할 때면 내가 직장 상사를 상대하는 건지, 아니면 대학 후배의 과제를 봐주는 선배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아, 또 시작이군.”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본 정구현이 묘한 동질감을 느꼈는지 슬며시 다가왔다.


“이번엔 또 무슨 과목인데요?”

“모르겠어요, 아마 교양과목 아닐까요? 요즘엔 과제까지 대신 작성하는 거 같아요.”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소승우가 툭 던지듯 말을 이었다.


“어제 새벽에 그것도 찍었어요. 회사 홍보용 숏폼이라고요.”


정구현은 소승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마트폰을 꺼냈다. 회사의 공식 계정. 스크롤을 내리자, 몇 안 되는 게시물들 사이에 그 영상이 있었다. 그 속엔 탈을 쓴 대표가 텅 빈 공간에 서있었다.


탈은 얼굴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색을 바꾸고 현란한 패턴을 쏟아내는 LED 패널이었다. 붉은색, 푸른색, 녹색, 보라색. 순서대로 정신없이 번쩍였다. 대표는 그 현란한 빛의 소용돌이 아래, 10초 남짓한 시간 동안 팔과 다리를 리듬에 맡긴 채 휘돌렸다.


“와-. 이게 바로 젠지세대...? 무섭다, 무서워.”


잠깐의 침묵 후 정구현은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소파 위로 풀썩 누웠다. 짧은 영상의 충격 때문인지 나는 간다는 말도 없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매번 출근할 때마다 붉게 덧칠하는 대표의 입술,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정장 차림, 그리고 필사적으로 끌어올리는 딱딱한 미소와 기계적인 말투까지.


그건 분명 '나 어른스러워 보이나요?' 하고 간절히 묻는, 갓 스무 살인 어린 대표의 나름 처절한 노력이라는 것을 우리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노력을 애써 눈치채지 못한 척, 능숙하게 모른 체해주는 것이 이 회사의 암묵적인 규칙이자, 서로가 그나마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식이었다.


‘그래, 뭐 어때. 오늘이 처음도 아니잖아.’


나는 대표의 방으로 향하며 속으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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