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현관문을 열자마자 해나의 날 선 목소리가 얼굴을 때렸다. 거실로 들어서자 그녀의 표정은 이미 잔뜩 굳어 있었다. 엄마는 멀찍이 부엌 문턱에서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대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으아-” 하고 과장된 피로의 신음을 내며 천장을 바라봤다.
“우미야, 얼음물 갖다 줘!”
그러자 곧 ‘우미’가 쟁반 위에 네모난 얼음이 부딪히며 찰랑이는 차가운 물을 가져왔다. 나는 그걸 단숨에 들이켰다. 정말이지 속이 뻥 뚫리는 듯했다.
“우미야, 고마워.”
빈 잔을 건네며 건성으로 고맙다 말했지만, 우미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던 말을 들은 것처럼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해나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모양이었다.
“우미? 쟤 이름이 우미야?”
“응, 왜?”
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해나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해나는 여전히 어찌할 바 모르는 표정으로 서 있는 엄마를 보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엄마, 잠깐 방에 들어가 있어.”
“너희들... 싸우려고 그래?”
걱정 어린 눈빛으로 우릴 번갈아 보는 엄마를 해나가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밀어 방 안에 들여보냈다. 그런 상황에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 척, 출처를 알 수 없는 노래를 나지막이 흥얼거렸다. 우미는 쟁반을 든 채, 내 발치에 흐트러짐 없이 꼿꼿이 서 있었다. 마치 주인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충실한 강아지처럼.
“언니, 제정신이야?”
해나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우미가 입을 벌리며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배 위에 겹쳐놓은 손에 조금씩 힘을 주며 숨을 골랐다. 동생과의 싸움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해나는 분노와 실망감이 뒤섞인 눈으로 우미를 가리켰다.
“쟤 좀 봐. 언니랑 똑같은 얼굴로 밥 차리고, 빨래하고, 심지어 엄마랑 쇼핑도 다녀.”
해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갔다.
“소름 끼치지도 않아?” 그녀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이 모든 상황이 끔찍하다는 듯.
나는 그런 동생을 힐끗 쳐다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집에 오지도 않으면서 참견은 참 잘해. “
“내가 오든 말든 그게 지금 중요한 거야? 저거, 처음 봤을 때 언닌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더라. 멀쩡히 살아있는 딸이 있는데 어떻게 대체품을 들일 수가 있어? 그것도 하트랩 제품을?”
해나가 입에서 침이 튀도록 열변을 토했다. 얼굴이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는 그 모습을 보니 퇴근 직전 마주했던 대표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대표실 문을 열자, 그녀는 거울을 보며 빨갛게 칠한 입술을 화장솜으로 박박 문지르며 지우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방에 들어서면 무장 해제라도 되는 듯 태도가 바뀌었다. 역시 MZ에서 Z를 담당하고 있구나 감탄하며, 오늘은 또 어떤 귀찮은 과제를 도와야 할지 속으로 긴장하며 기다렸다.
‘이모대학교 사회복지과 3학년 백해나라는 분, 사자 씨 동생 맞죠?’
대표가 동생에 대한 신상을 읊자, 속으로는 놀랐지만 애써 티 내지 않았다.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 맞습니다.’
그러자 대표는 잔뜩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백해나 씨가 반품 요청과 함께 우리 회사를 민원 넣었어요.’
‘네?’
‘불. 법. 제. 품. 생산한다고요.’
대표는 '불법제품'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하며 날 쳐다봤다. "어떡할 거예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묻는 그녀의 시선이 턱없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시선을 슬쩍 피하며 최선을 다해 동생을 설득해 보겠다고만 말하고 도망치듯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딴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해나는 계속해서 '저거'란 단어를 입에 담으며, 당장 치우라고 발을 쿵쿵 굴렀다. 그녀가 말하는 ‘저거’란 바로 ‘우미’,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효도 전용 휴머노이드’였다. 이 모델은 하트랩의 첫 번째 메인 제품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모델이었다. 문제는 그 휴머노이드가 하필이면 본가에 있었고, 게다가 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해나는 그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입으로만 효도를 하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아.”
나는 최대한 감정을 죽이며 말했다. 해나와 내가 대화를 나눌수록 우미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입술만 들썩였다. 끼어들 타이밍을 재는 듯했지만, 차마 나서지는 못했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언니가 죽었어?”
해나가 날카롭게 되받아치자 우미가 그제야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해나야, 언니는 죽지 않아.”
그 말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공기가 얼어붙었다. 어느새 눈이 붉게 충혈된 해나는 우미를 노려보다가 이내 씩씩거리며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쾅! 하는 소리가 집안에 길게 울려 퍼졌다.
남겨진 정적 속에서 우미는 영문을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소파에 기댄 채, 서서히 식어가는 듯한 마음을 가만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