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내를 신고합니다

by 카폐인


나는 카페 창밖을 바라봤다. 흐릿한 유리창을 타고 내리는 빗방울은 느리게, 끊어질 듯 이어지며 흘렀다. 말소리, 재즈 음악, 그리고 커피 머신의 기계음이 뒤섞인 실내는 소란스러웠다. 나는 그 소음 속에서도 마주 앉은 상대방의 기분이 매우 신경이 쓰였다.


공감 능력이라고 보기엔 부끄럽고, 그저 남들의 미세한 표정과 사소한 반응을 과도하게 신경 쓸 뿐이었다. 이런 내 성격은 솔직히 얻는 것보단 잃는 게 더 많았다. 덕분에 늘 피곤했고 사람들과 섞여 있는 게 괴로웠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최대한 공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상대방과 동기화되는 감정을 꾹 눌러 참고, 가능한 말 없이 들어주는 게 최선이었다.


"아니 글쎄, 내가 어제 게임 아이템 소액결제 좀 그만하라고 했더니 휴대폰을 집어던지는 거 있지? 완전 박살 났어. 진짜 무서웠다니까."


소정의 눈이 곧 눈물이라도 쏟아질 듯 그렁했다. “어머, 왜 그랬대?” 테이블에 둘러앉은 친구들의 표정엔 걱정보다 호기심이 짙었다.


"소정아, 너 그러다 진짜 맞으면 어쩌려고 그래."

한 친구의 목소리에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났다.
"차라리 교체해!" 다른 친구가 답답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에이, 고작 이 정도 가지고? 남자가 욱할 수도 있지. 아직 신혼 1년도 안 됐잖아."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말리듯이 반박했다. "너 아기 가질 거라며, 그때도 손찌검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누군가 새로운 걱정을 던졌다.


작은 소란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로봇 남편의 인공 근육이 고장 났다는 둥, 회사에 컴플레인을 걸어야 한다는 둥, 폐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둥. 그러나 결국엔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는 결론으로 돌아왔다. 제자리걸음인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동안 나만 침묵을 지켰다. 그때 소정이 나를 바라봤다. 혼란과 답답함이 뒤섞인 눈빛이 해결책을 갈구하고 있었다.


"사자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답이 뻔한 이 지루한 문제를 더는 풀고 싶지 않았다. 이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는 분명 다음에도 비슷한 문제를 들고 올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고민하는 척하다가, 최대한 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그냥 네가 맞아주면 되는 거 아냐?"


순간 테이블 위로 정적이 떨어졌다. 소정의 눈이 커졌고, 누군가는 헛기침을 했으며, 누군가는 쓴웃음을 지었다. 공감은 피곤하고, 해결책은 늘 단순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내가 말한 그 단순함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빗물이 흘러내린 자국이 아까보다 더 길고 어지러웠다.


*


밖으로 나서자마자 빗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나는 우산을 펼쳐 들고 축축하게 젖은 거리를 걸었다. 걸을수록 비에 젖은 운동화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경쾌한 발소리가 가까워졌고, 누군가 빠르게 내 곁으로 뛰어들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누군가 내 팔짱을 자연스럽게 껴왔다.


"언니!"


홍초빈이었다.

그녀는 빗물에 젖어 반짝이는 얼굴을 내 쪽으로 바짝 붙였다. 익숙한 딸기향이 그녀에게서 은은히 풍겼다. 시선을 내리니 전에 봤던 전자담배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녀는 투신했던 그날보다 훨씬 활기차 보였다. 마치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과하게 밝아졌달까. 고친 팔의 피부는 이전보다 더 매끄럽고 윤기가 흐르는 듯했다.


"어머니는..."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덕분에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직원분들을 딸 친구로 여겨서 문제지만." 초빈이 천진하게 답했다.


본의 아니게 초빈의 '엄마'인 휴머노이드는 회사를 집처럼 여기며 우리의 식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녀는 수리 도중 자신이 로봇임을 자각했지만 개의치 않아 했다. 초빈의 엄마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딸 곁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런 그녀를 말렸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팔다리 부품이 녹슬 것 같다”는 그녀의 우스갯소리에 결국 마음대로 하게 놔두었다. 그리고 초빈은 팔을 치료한 다음 날, 우리 동료가 되었다. 소유하 대표가 어김없이 '당신은 필요한 인재'라며 계약서를 들이밀었기 때문이었다.


"여긴 어떻게..." 내가 물었다.

"제가 먼저 카페에 와 있었는데 언니가 우연히 들어온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방금 전 했던 말 정말 마음에 들어요."


초빈이 해맑게 웃으며 속삭였다.


회사 동료가 된 그날부터 초빈은 나를 '언니'라 부르며 스스럼없이 대했다. 솔직히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에 놀랐지만 싫지는 않았다. 반면, 남자 동료들에게는 쌀쌀맞게 굴었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잘 된 거 있죠. 안 그래도 제가 이번에 맡은 건 때문에 사전 조사하러 가야 하는데 이렇게 언니랑 마주치다니."

"응?"

"지금 바로 가요!"


어느새 하늘은 개어 있었다. 초빈은 전자담배를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나는 서둘러 우산을 접으며 그녀에게 끌려 정신없이 걸었다. 우리는 고급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초빈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회색 외제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우리 앞에 멈춰 섰다.


"혹시 하트랩 직원분들이십니까?"


운전석 창문이 내려가자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신고 담당자 홍초빈입니다."


초빈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더니 초빈이 가볍게 내 등을 밀며 앞으로 나를 내보였다.


"이쪽은 이번 의뢰를 맡아주실 백사자 감사관님이십니다."


나도 모르는 새 사건을 맡게 될 줄이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얼어붙었지만,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표정을 유지했다.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려는 듯한 불안과 긴장이 담겨 있었다. 이윽고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곧 제 아내가 돌아올 시간이라... 우선 타시죠."


우리가 망설이고 있자, 뒷좌석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나는 초빈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 남자는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한 후 자율주행 모드로 전환했다. 차는 조용히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중지를 요청하셨죠?"


초빈이 말했다. 그녀의 물음에 깊은 한숨을 내쉰 남자가 대답 대신 조수석 서랍에서 투명 파일을 꺼내 건넸다. 나는 휴머노이드의 사진과 상세 사양이 적힌 서류를 꼼꼼히 훑었다.


"서류상으론 완벽한 모델인데요?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이 없어 보입니다."


내 말에 초빈 역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러나 남자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게 문제예요."


"네?" 서류만 응시하던 내가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았다. 차 내부 거울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깊은 절망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제 아내가... 너무 완벽해요."


그의 목소리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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