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은 우리를 작업실로 안내했다. 그의 아파트에서 차로 10분 남짓 걸렸을까. 목적지에 도착하자 예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정체 모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는 벗어던진 옷가지와 구겨진 음료수 캔이 발 디딜 틈 없이 널브러져 있었고, 작업용으로 보이는 넓은 책상 위에는 담배꽁초가 위태롭게 쌓인 재떨이가 섬처럼 놓여 있었다.
의뢰인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정돈이 안 돼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쪽 소파는 깨끗합니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퀭한 눈과 푸석한 피부는 그가 며칠은 족히 밤을 새웠음을 짐작하게 했다. 홍초빈은 말없이 팔짱을 낀 채,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소파 한쪽에 몸을 기댔다. 나는 그의 건조한 눈빛을 마주하며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먼저,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그는 구석에 놓인 박스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간이 테이블 위 작은 스탠드에 놓았다. 곧이어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화면 속에는 단정한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의뢰인의 아내, 즉 휴머노이드였다. 그녀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거실과 부엌을 오가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한 정장 차림의 의뢰인이 화면에 등장했고, 아내가 안내하는 대로 식탁 앞에 앉았다.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매일 아침, 정확히 6시 45분이면 이렇게 식사가 준비됩니다. 제가 자리에 앉으면 아내는 따뜻한 블랙커피를 제일 먼저 가져다주죠.”
그의 말처럼 화면 좌측 상단의 타임스탬프는 ‘06:45:00’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영상 속 그가 아내에게 “고마워, 여전히 맛있네.”라고 말하자, 아내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정말? 나도 너무 기뻐.”라고 화답했다.
“소리도 전부 녹음되나 보군요?”
내가 묻자 남자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을 스치듯 내비치더니 대답했다. “네, 물론 아내도 동의한 사항입니다.” 나와 남자의 짧은 대화만큼 영상 속 부부도 더는 말이 없었다.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외에는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는 조용한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은 여느 평범한 부부의 아침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을 증폭시켰다. 와중에 초빈은 노골적으로 지루하다는 듯 길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참지 못하겠다는 듯 의뢰인에게 말했다.
“이거, 좀 앞으로 당겨서 볼 수 없을까요? 중요한 부분...”
초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면 속에서 쨍그랑!하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영상 속 의뢰인이 식탁 위의 컵을 바닥으로 떨어트린 것이다. 그의 표정이나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명백한 고의였다. 그가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접시를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접시는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아내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신속하게 신문지와 작은 쓰레받기를 가져와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파편을 줍는 그녀의 손놀림은 잔상만 남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빨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의뢰인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마치 과호흡 직전의 사람처럼 헐떡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의 불안정한 숨소리를 감지한 아내가 하던 일을 즉시 멈추고 손을 털며 그에게 다가갔다.
“여보, 괜찮아?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해줘.”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염려에도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흐느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내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거실 서랍에서 담요를꺼내 남편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그리고 등을 토닥이자 남자가 아내의 손을 뿌리쳤다.
“그만해. 당신 그거 알아? 난 당신이 끔찍해.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건 다 당신 때문이야. 오늘 집에 안 들어올 거니까 그런 줄 알아.”
허공에 잠시 떠 있던 손을 거둔 아내가 남편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았어, 여보. 조심해서 다녀와.”
남자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차 키를 챙기고 급히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영상을 멈춘 그가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연차 낸 걸 알리지 않고 다음 날 늦게 일어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날도 커피는 따뜻했어요.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아니, 사실은... 항상 저를 파악하고 있었던 거겠죠.”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의뢰인은 마주 잡은 두 손을 불안하게 비볐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힘겹게 입을 열려던 바로 그때, 그의 스마트폰에서 짧은 알림음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