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증명이 될까?

by 카폐인


“여보, 여기 있었구나.”

“지, 지선아.”


남자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떨렸다. 우리의 시선 끝에는 단정한 원피스 차림의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지선, 모델명 ‘카리타(Caritas)’. 하트랩에서 두 번째로 출시한 국내 맞춤형 정서 동반 휴머노이드였다. 연인 또는 부부의 형태로 상대방의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된 감정 특화 모델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하트랩 제품은 항상 구매자의 취향을 반영한다는 점이었다.


지선의 아름다운 얼굴엔 상냥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훈 오빠,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지선이 또렷한 목소리로 물으며 천천히 지훈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남편만을 향하고 있었다. 옅은 노란빛이 번뜩이는 눈동자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를 연상케 했다.


“당신 손목에 박힌 GPS가 여기를 가리키고 있더라고. 연락도 없이 제시간에 집에 안 오길래 걱정돼서 와봤지.”


지선은 지훈의 옆에 바짝 붙어 앉더니, 부드럽게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손길은 다정했지만 지훈의 얼굴은 공포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흠흠.”


이쯤에서 헛기침을 해야 우리 존재가 잊히지 않는다. 지선이 그제야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동공에서 노란 나선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분석 모드라는 의미였다.


“두 분은 누구신데 제 남편과 함께 계시죠?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나는 그녀가 흥분하지 않도록 차분히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김지선 님. 저는 하트랩 소속 감사관 백사자이고, 옆은 신고 담당자 홍초빈입니다.”


내 소개에 맞춰 초빈이 인위적인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지훈 씨와 지선 씨의 결혼생활 점검을 위해 논의 중이었습니다.”


“결혼 생활 점검이라뇨?” 지선의 미간이 깊게 접혔다.


“반년밖에 안 된 제 사랑이 무슨 문제가 있죠? 저는 남편을 위해 모든 걸 합니다. H보관소에서도 연락이단 한 번도 없었고요. 지금 얼마나 행복한데요. 이게 그 증거 아닌가요?”


지선은 목소리를 점점 높이더니, 윗단추를 두 칸 풀고 쇄골 아래를 드러냈다. 피부를 뚫고 나온 듯한 작은 디스플레이가 반짝였다. 그곳엔 ‘사랑’이란 단어 옆으로 다섯 칸 중 네 칸이 마젠타색으로 선명하게 차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 한구석이 아릿했다. 사랑이 시각화된다면, 눈에 보이는 사랑만이 진짜 감정이 되는 걸까? 그녀의 감정은 오직 지훈만을 향해 있었다. 물론 이 역시 구매자인 지훈의 주문이겠지만.


지훈은 식은땀을 흘리며 아내와 우리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렸다. 지선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오빠, 괜찮아. 난 여보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어. 이렇게 사랑하니까.”


지선의 노란 눈빛엔 맹목적인 확신만이 담겨 있었다. 자신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 앞에서, 지훈이 호흡곤란이 온 듯 목을 움켜쥐고 헐떡였다. 지선은 그런 지훈을 잡고 일어섰다.


“가자, 이 사람들이 우릴 방해할 순 없어.”


지선이 갑자기 움직이자 지훈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잠깐만요!”


내가 급히 손을 내밀었지만, 지선은 그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나는 지훈 씨를 사랑하도록 만들어졌어. 오류 같은 건 없어.”


그러자 붙잡힌 사냥감처럼 끌려가던 지훈이 절규했다.


“리셋, 리셋해 주세요!”


그는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을 뱉고 말았다.






지훈의 말과 동시에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 울렸다. 그 소리와 함께 지선의 손이 섬광처럼 지훈의 정수리를 향해 뻗어오더니, 머리카락이 닿을 듯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칼같이 멈춰 섰다.


“당신 뭐야?” 옆을 본 지선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초빈이 재빨리 일어나 지선의 팔을 낚아채듯 붙든 것이다. 그 틈을 놓칠세라, 나는 지선의 뒷목 바코드에 기기를 갖다 댔다. 이어폰 너머로 승우의 원격조정이 작동해 지선의 행동이 멈췄다.


“휴, 일시정지 됐죠?”


-아,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이어폰에서 승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시간 후에 돌아오는 거 맞죠?”


-네. 일단 그 멍청한 의뢰인한테 입 좀 닥치라고 해요.


승우의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금 승우가 모니터 앞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연거푸 마시며 입모양으로 욕설을 퍼붓고 있을 장면이 훤히 그려졌다.


초빈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브이 사인을 날렸다. 기계팔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지훈을 간단히 일으켜 소파에 앉혔다. 나는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앉은 지훈에게 주의를 줬다.


“리셋 설정을 ‘동반 자살’로 해놓으셨죠? 앞으로는 주의하세요.”

“아… 깜빡했네요.”


당사자가 잊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지훈의 무심한 대답에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우선 조치를 취해야 했으니까. 나는 이어폰 너머의 승우가 알려준 대로 말했다.


“이 모델은 감정 모듈이 과도하게 서로 연결돼 있어요. 강제로 끊으려 하면 시스템이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종료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럼 어떻게…”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발견되는 오류 코드마다 백신으로 하나씩 치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말을 듣던 지훈의 얼굴 위로 짙은 절망이 먹구름처럼 드리웠다. 그의 태도에 나는 이어폰을 두 번 터치해 잠시 승우와의 연결을 멈췄다. 그리고 줄곧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아내분을 사랑하시지 않나요?”


그는 두 손을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꽉 쥔 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차오를 듯 흔들리는 시선을 숨기려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가 들썩거렸지만, 소리 내지 않는 흐느낌만 새어 나왔다.


나는 그런 지훈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직 자신만 바라보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설계된 나만을 위한 사랑을 주문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고통스러워 할 수 있는지.


인간은 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욕망하고, 그걸 얻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진짜 욕망을 깨닫는다.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를 보고 있는 내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걸 느꼈다.


“감사관님! 이것 좀 보세요!”


그때, 정적을 깬 것은 초빈의 외침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바코드 스캔 기기 화면이 미친 듯이 불길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초빈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마주한 화면은 온통 시뻘건 경고의 빛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 섬뜩한 빛 한가운데, 낙인처럼 찍힌 시스템 메시지들이 차례로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


[시스템 경고]


비정상 데이터 발견: ‘헤이트’ 파편 감지

모델명 카리타 이하 ‘김지선’: 폐기 승인

원격 접속자: H보관소 소장 한이결


마지막으로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압력이 온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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