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목적이요? 배우자 대용으로 체크했어요. 그게 제일 심플하니까요.”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운 것은 지훈이었다. 카메라는 오롯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고, 그는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갔다. 자신에게 꼭 맞는 여성 휴머노이드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그는 이혼은 한 번으로 족하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덧붙였다.
화면이 바뀌었다. 곧이어 다른 세상인 듯 밝고 경쾌한 1분짜리 광고 영상이 흘러나왔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두 남녀가 있습니다.’
감미로운 내레이션과 함께 정장 차림의 지훈과 순백의 원피스를 입은 휴머노이드 ‘지선’이 등장했다. 누가 봐도, 이상적인 연인의 모습이었다.
싱그러운 정원이 내다보이는 넓은 창 아래, 체크무늬 테이블보가 덮인 아담한 테이블. 지훈이 먼저 의자 하나를 빼자, 지선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지훈 역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화이트 샴페인을 두 잔에 따랐다. 잠시, 둘은 서로를 사랑해 마지않는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윽고 둘은 샴페인 잔을 가볍게 부딪히며 정면의 카메라를 응시했다.
뒤이어 까만 화면 가득 떠오르는 문구.
‘사랑이란 유통기한이 짧은 중독제입니다.’
‘완벽한 반려자, 이제 하트랩이 맞춰 드립니다.’
그렇게 짧고도 긴 영상은 끝이 났다.
어느덧 오후의 마지막 햇살이 통유리창을 비스듬히 관통하며, 소유하 대표의 집무실 바닥에 길고 희미한 사각형을 그리고 있었다. 소유하는 최고급 가죽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다음 화면을 가득 채운 하트랩의 분기별 실적 보고서를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상승 곡선을 그리는 그래프는 마치 그녀의 성공 가도를 대변하는 듯 선명했다.
다만, 카리타(Caritas) 모델 중 ‘지선’의 데이터는 그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예상 경로를 0.06% 이탈했네... 사소한 변수인가.
학습 알고리즘이 스스로 감정의 구조까지 흡수했단 말이야? 그럼 조금 귀찮아지겠는데.”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이번 일에 대해 묻고 싶었다. 휴머노이드 김지선. 그녀의 안부에 대해, 아니 어쩌면 그녀의 존재에 대해 묻고 싶었다.
일반적인 휴머노이드의 수리나 폐기는 이 업계에선 너무나 빈번한 일이지만, 내가 짧게나마 마주했던 그녀는 분명 달랐다. 그녀가 보여준 사랑에 대한 맹목적일 정도의 확신은 위태로워 보일 만큼 올곧았다. 구매자인 지훈이 그만큼의 사랑값을 입력하진 않았는데 말이다.
“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나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소유하는 마시던 코코아를 테이블 위로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그녀는 이미 내가 무슨 질문을 할지 알고 있다는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김지선이 말인가요?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어요?”
소유하가 어린아이의 뻔한 수수께끼를 들은 어른처럼 싱긋 웃었다. 붉은 입술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치아가 순간 날카롭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소유하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에이, 알면서.”라며 손날로 허공을 가볍게 내리쳤다. 그 무심한 동작은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한이결. 그 여자한테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요. 인간 김지훈이야, 정신병원에 들어갔고, ‘김지선’은 그날로 목이 잘렸어요. ”
그녀의 목소리는 나긋했지만, 내용은 밖에 쌓인 눈처럼 차가웠다.
“아마 지금쯤이면 부품은 다 분해되어, H보관소의 선반 어딘가에 처박혀 있겠죠.”
쯧, 아쉽게 됐어요. 소유하는 첫 광고 모델로서의 상품 가치가 사라진 걸 아쉬워하는 듯, 그녀가 덧붙였다. 나는 그 말에 굳어지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H보관소. 공식적으로는 폐기되거나 회수된 휴머노이드의 부품을 통합 관리하는 국가 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하트랩 같은 휴머노이드 제작사를 암암리에 감시하고 통제하는 그림자 같은 곳. 그리고 그 정점에 서 있는 인물, 한이결 소장. 어째서인지 작년부터 하트랩을 향한 감시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죄고 있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했다.
소유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대로 찍혔어요, 우리가. 더 정확히는, 대표인 나와 백사자씨 말이에요.”
그녀는 가느다란 검지로 자신을 우아하게 한번 가리키고는, 다음으로 나를 정확히 겨누듯 콕, 찍었다.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한이결이 왜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거지?
“왜 저를...”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소유하가 자리에서 살짝 몸을 기울이며 낮게 속삭였다.
“봤데요. 작년 이맘때쯤 눈이 내리던 날, 장례식장에 있던 백사자씨를요.”
작년 이맘때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장례식장...
설마. 머릿속에서 뭉텅뭉텅 조각난 기억의 조각들 이하나의 그림으로 조금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친구를 잃었다며 하염없이 울던 동생을 진땀 나게 달래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검은 옷의 행렬, 그 끝에 놓인 수많은 하얀 국화들. 장례식장 특유의 무거운 침묵 속에서도 사람들의 입에선 휴머노이드에 관한 이야기들이 수군거림처럼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배경으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영정 사진 속 인물을 보던 젊은 여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맞아요. 그 애, 한이결의 동생이었잖아요.”
소유하가 내 머릿속을 훑기라도 한 듯,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백사자 씨의 첫 고객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