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꿈속에는 저 마다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수많은 사람들, 거리마다 버려진 수많은 글이 적힌 종이들, 그리고 그 속에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바닥에 앉아 있는 나.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길 몇 초 지났을까?
갑자기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 옆에 앉았다. 무심코 옆을 본 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설렜다.
배우 이준혁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는 무표정이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자 나는 무언의 초조함을 느꼈다. 아니, 초조해졌다는 게 맞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무언가 해결해야겠다. 뭔지 모르겠지만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마, 나는 그가 내 곁을 떠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른 손바닥에 ‘계약 결혼’이라는 글자를 썼다. 볼펜도 없이 왼쪽 검지로 쓰니 써졌다. 이렇게 터무니없고 황당함은 전부 ‘꿈’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가능한 것이리라.
나는 무턱대고 계약 결혼이라 쓴 손바닥을 그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그는 약간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거절을 한다거나 불쾌해한 표정을 짓진 않았다. 더욱이 ‘떠난다.’는 모션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는 내 손바닥을 보고 약간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저 내 옆에 앉아이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을 채우고, 떠나고를 무수히 반복해도 그는 내 곁에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아주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당장에 해몽을 찾아보았다. 명확하게 나온 건 없었다. 길몽 그 언저리의 해석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냥 기분 좋은 꿈이겠거니 했다. 어떤 소식을 물어다 줄 거라고. 왠지 짐작되는 그 일일 거라고. 그리고 왠지 짐작되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 문자가 온 것이다.
벌써, 두 번째다. 5월에 한 번, 또 이번 8월에 한 번.
그러나 그 길몽 언저리에 있을 해몽처럼 내 기분은 그렇게 좋지도 싫지도 않은 뜨뜻미지근한 더운 날의 맹물처럼 쳐질 뿐이었다.
그저 이런 생각만 들뿐이었다.
날 잊지 않고 소식을 보내주다니 좋은걸?
그렇지만… 이왕이면 실어주면 좋지 않았을까?
종이의 어디 구석 모퉁이라도?
그리고 또 든 생각은
도대체 깊고 좋은 사연이란, 무엇이란 말이야?
두 번의 실림, 수많은 미채택, 그리고 두 번의 아쉬운 문자.
그리고 또또 든 생각은
이런 양복 입은 남자(사무직으로 보이는 남자)가 등장하는 꿈을 꾸면 꼭 어떤 소식이 온단 말이지.
지난 5월에도 그랬고, 기고에 채택되어 내 글이 실릴 때도 그랬다.
아쉽지만 어쩌겠나. 모든 글들은 올리고 나면, 보내고 나면 그 결과와 반응은 내 손을 떠나는 것인 것을,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인 것을, 불가항력인 것.
쓰면 쓸수록, 독서를 하면 할수록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스타일로 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일단 쓰고. 고칠 것이다. 그냥 막무가내로 전개하고 마구잡이로 수정할 것이다.
결말을 봐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은가.
지난날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에는 에세이를 쓰더라도 나름 여러 번 고쳐서 올리고 그랬는데.
오늘 올리는 이 글은 날것 그대로의 솔직한 내 심정이다. 수정 따위 하지 않을 거다.
뻑큐!
계속 인내하며, 교양 있게, 차분히 의견을 나누며 글 쓰는 일상이란 나에겐 어렵다.
그것은 불가능한 영역.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 ‘우아한 글쓰기’란 판타지 장르이다.
여름이면 카페는 바쁘다. 그만큼 나는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고, 그만큼 나는 통증을 달고 있다.
장시간 앉아 글을 쓰는 일은 그늘 없는 땡볕에 삼십 분 이상 서 있어야 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목과 어깨가 너무 아파서 못 쓰는 것이다. 내 의지를 벗어난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동생이 사준 푹신한 좌식 의자에 앉아 다리 위에 노트북을 올리면 어깨에 덜 무리 가서 쓰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거다. 지금처럼.
그래도 생각나면 틈틈이 휴대폰에 메모하는걸, 노트에 볼펜으로 끄적여 보기도 하는 걸.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영 글쓰기와 먼 일상을 지내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게 내 나름의 노력인 것이고 꿈이 꿈으로만 남지 않을 거란 작은 증거인 것이다...휴식은 있어도, 절필은 내 인생에 없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묻는다면.
아주 오래전 내가 완성했던 소설 하나를 발견했기에
그때의 내가 이야기 하나를 완성했다는 걸 알았기에
내가 그럴 수 있다는 사람인 걸 새삼 깨달았기에
정말이지 까맣게 잊고 있던 나를 마주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