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가 당신의 투자 기회를 삼키고 있다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 EA)가 주식시장에서 사라지기로 합의했다. 550억 달러(약 77조 원) 규모의 역사상 최대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LBO)다. 또 하나의 미국 블루칩 기업이 사모펀드의 문 뒤로 사라진다. 매달 익숙한 기업명이 인수되고, 상장 폐지되고, 일반 투자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진다.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며 알게 될 기업들은 그들이 절대 투자할 수 없는 기업이 될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훌륭한 기업을 골라 장기 보유하면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오늘날, 기업이 진정으로 뛰어나지는 순간 더 깊은 주머니를 가진 누군가가 그것을 가져간다. EA는 작년에 74억 달러(약 10조 3,60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EA 스포츠 FC(EA Sports FC), 매든(Madden), 심즈(The Sims)를 소유하고 있다. 이제 이 회사는 사우디 국부펀드(Public Investment Fund, PIF)와 사모펀드들의 것이 되어 상장 폐지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것이다. 주식 시장은 기업들이 인수될 만큼 가치 있어질 때까지 앉아 기다리는 대기실이 되었다.
미국 주식시장이 눈앞에서 줄어들고 있다. 1996년 약 8,000개가 넘던 상장 기업이 2024년 약 4,000개로, 시장의 절반이 증발했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과 2008년 금융위기 때 가장 가파르게 떨어졌지만, 충격적인 건 그 이후에도 숫자가 절대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S&P 500이 올해 약 14% 상승하며 6,718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동안에도, 실제 기업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1996년 정점이였던 8,090개에서 2024년 4,010개로, 정확히 50.4% 감소했다. 과장하자면, 이 속도라면 우리의 손주들은 주식시장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을 것이다.
상장폐지(take-private) 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99년 거의 없던 거래가 2022년 3,210억 달러(약 449조 원)로 정점을 찍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잠시 주춤했던 거래가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2024년에도 2,500억 달러(약 350조 원)이상을 기록했고, 2025년은 9월 말 기준 이미 1,480억 달러(약 207조 원)에 달한다.
이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2012년 이후 거의 매년 1,000억 달러(약 140조 원) 이상의 상장 기업이 사모펀드의 손으로 넘어갔다. EA 단일 거래만 550억 달러(약 77조 원)다. 2007년 Texas Utility Group(TXU)를 320억 달러(약 44조 8,000억 원)에 인수했던 당시 기록을 훌쩍 넘어섰다.
인수 주체는 사우디 국부펀드(PIF), 실버 레이크(Silver Lake),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Jared Kushner)가 운영하는 어피니티 파트너스(Affinity Partners)다. PIF는 기존 보유 지분 9.9%를 승계하며 압도적 최대 주주가 된다. 주주들은 주당 210달러(약 29만 4,000원)를 현금으로 받는다. 거래는 2027년 1분기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차입매수(LBO)는 기업을 인수할 때 대부분 빌린 돈을 사용하고, 인수된 기업이 그 빚을 갚게 만드는 방식이다. EA의 경우 200억 달러(약 28조 원)의 인수 금융이 필요하며, JP모건 체이스 은행(JPMorgan Chase Bank)이 전액 대출을 확약했다. 사모펀드들은 자신들이 투입한 자본을 제한하면서도,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자신들의 재정적 위험은 회피할 수 있다.
2024년 기업공개(IPO)는 200개를 약간 넘었다. 1990년대 연평균 400개와 비교하면 절반이다. 1996년에는 624개의 IPO가 380억 달러(약 53조 2,000억 원)를 조달했고, 평균 6,100만 달러(약 854억 원)였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연간 300개 미만의 IPO가 있었지만, 평균 연간 IPO 수익금은 1996년 정점을 초과했다.
기업들은 더 늦게, 더 크게 상장한다. 그리고 일단 상장하면 곧 누군가가 와서 다시 비상장으로 만든다. 2016년 4,800개 이상의 비상장 기업이 인수되었는데, 1996년 IPO 정점 시기의 약 1,950개와 비교하면 2배 이상이다.
매그니피센트 세븐(Magnificent Seven, M7) 빅테크 기업들이 이제 S&P 500 가치의 약 30%를 차지한다. 시장 집중도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 메타, 테슬라. 이 7개 기업이 미국 주식시장을 지배한다.
나머지 기업들은? 사라지거나, 인수되거나, 상장폐지된다. 1996년 이후 우리는 상장 기업의 절반을 잃었고,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은 지금 197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상장 기업 수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주식 시장은 중요하다. 규제된 환경에서 소유권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상장하지 않거나 상장을 유지하지 않을 때, 일반 투자자들은 성장에 대한 노출이 줄어든다.
사모 시장은 장기 프로젝트 자금 조달에 유용하지만, 접근은 제한적이고 최소 투자금은 높으며 유동성은 낮다. 결과는 명확하다. 성장 스토리 참여가 기관투자가와 부유한 투자자들에게만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토론토 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 크레이그 도이지(Craig Doidge) 재무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상장 격차, 즉 실제 상장 기업 수와 예상 수의 차이는 크고 2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것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뚜렷한 미국 현상이다."
문제는 단순히 숫자가 아니다. 젊고 혁신적인 기업에 투자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비상장 상태에서 성장 과정을 대부분 끝내고 성숙기에 접어들어서야 상장한다. 또는 아예 상장하지 않고 곧바로 사모펀드에 매각된다.
주식 시장에 남아있는 것은 이미 거대하고 성숙하며 성장 여력이 제한된 기업들뿐이다. 또는 M7처럼 너무 커서 아무도 살 수 없는 기업들. 중간 지대는 사라지고 있다. 차세대 애플이나 아마존을 발견하고 초기에 투자할 기회는 이제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의 특권이 되었다.
EA 거래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매달 더 많은 기업이 사라진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예전엔 누구나 성장하는 기업에 투자할 수 있었어"라고 말하게 될 것이지만, 그들은 그러한 사실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주식시장은 기업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기 전 대기하는 축사가 되었다. 일반 투자자는 관람석에서 지켜만 볼 수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