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여행] 새로운 취미가 좋은걸!!?

- 막걸리 담가먹는 이야기(2) -

by 도시백수

[2024년 겨울]


우리 술 빚는 법은 아주 다양하다. 가장 기본인 누룩부터가 불특정한 균들의 집합체기 때문이다. 어느 한 특성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 술 빚는 과정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발효과정의 수많은 변수로 인해 그 결과물인 술맛 또한 미리 예측하기 어렵다. 우리 술은 바로 그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현대식 양조는 특정 균만을 추출하고, 일정한 방식과 조건 하에서 술을 빚어 결과물 또한 예측가능하다. 다양성은 버리고, 상품성과 효율성은 높였다.


하지만, 내가 빚는 것은 집에서 개인이 만드는 술, 바로 가양주다. 우리 전통 가양주의 종류는 지금 이 순간, 술을 빚고 있는 집과 그 사람들 숫자와 같을지 모른다. 그만큼 술 빚는 법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대강의 흐름은 있다. 고두밥(이 것도 자세히 말하면 곡물의 종류도 다를 수 있고, 밥으로 하느냐 떡으로 하느냐도 다를 수 있고, 그냥 생 곡물가루로 할 수도 있다고 한다.)을 쪄서 누룩과 물을 넣어 섞고, 20도에서 25도 사이의 상온에서 발효시킨다. 발효가 끝나면 찌꺼기를 거르고, 다시 냉장고 등에서 2차 숙성을 하고 마신다. 여기서 2차 숙성은 취향 차이인 듯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길 권하고 있다.


준비와 첫 시도


퇴근하고 보니, 인터넷으로 주문한 누룩이 현관에 도착해 있었다. 만사를 제치고 비누를 이용해 손부터 깨끗이 씻는다. 타월을 이용해 박박 씻는다. 2리터 생수 두 병은 어제 사서 아랫목에 두고 식혔다. 물은 차가워도, 뜨거워도 좋지 않다. 상온의 미지근한 물이어야 좋다.


맵쌀 250그램과 찹쌀 250그램을 물에 넣고 열 번 정도 물갈이를 하며 씻는다. 쌀알 표면의 전분가루를 제거해 주기 위한 과정이다. 이때 너무 힘을 주어 씻으면 쌀이 깨지고 술에서 쓴 맛이 난다. 부드럽게 원을 그리듯 손을 돌리며 가볍게 씻어야 한다. 세척이 끝난 쌀을 밥솥에 넣고 물은 표면에서 1cm 정도만 위로 채운다. 고두밥으로 앉히기 위해서다. 전기밥솥의 일반취사 기능을 이용한다. 원래 고두밥은 쌀을 오래 불린 뒤 찜기를 이용해 증기로 쩌야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아 전기밥솥을 이용했다.


누룩(진주곡자 우리밀-앉은뱅이 누룩) 125그램을 계량해 용기에 넣고 물 250 밀리리터를 채워 불린다. 30분 뒤 비닐장갑을 끼고 누룩을 으깨어 봤으나, 딱딱한 상태 그대로가 많다. 30분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최소 반나절 이상 불려야 모두 풀어질 것 같다.


저녁식사 준비를 하다 보니, 밥이 다 되었다. 차가운 식탁에 종이포일을 깔고 밥을 넓게 펼친다. 최대한 빨리 식혀야 한다. 추운 집안이 이럴 땐 도움이 된다. 선풍기까지 동원할 수도 있지만, 차갑게 식은 우리집 식탁 유리 덕분에 순식간에 식었다. 그런데, 밥이 너무 찰지다. 먹어보니 평상시 먹는 밥과 거의 같다. 물을 너무 많이 넣은 모양이다. 다음엔 0.5cm 정도만 채워야겠다.


물에 풀어놓은 누룩(수국이라고 한다.)이 담긴 용기에 밥을 넣는다. 오염 방지를 위해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밥과 수곡을 살짝 섞는다. 물 850 밀리리터를 용기에 추가하고 본격적으로 치대기 시작한다. 치댄다 함은 쌀과 누룩이 잘 섞이고 서로 잘 달라붙게 하기 위해 손으로 조물조물 만져주는 것을 말한다. 이때 쌀알이 으깨지지 않도록 힘조절을 잘하면서 치대야 한다. 어느 유튜버는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최소한 15분 이상 치대 줘야 한다고 해서 지루함을 견디며 조물조물해 준다.


알코올로 내부를 소독한 사각 스테인리스 용기에 치댐이 끝난 내용물을 담는다. 딱 반정도 차 오른다. 적당한 량이다. 머릿속에 생각한 계획이 이렇게 잘 맞으면 기분이 좋다. 보통 쌀을 최소 1킬로그램 이상은 사용하는 것 같다. 난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술이 잘 만들어진다 해도 그 많은 양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적게 시작했다. 그래도 결과물은 2리터의 술로 예상된다.


면포 대신, 키친타월 여러 겹으로 뚜껑을 만들어 덮는다. 발효 처음 일정 기간(나는 사흘로 계획하고 있다.)은 효모의 증식을 위해 공기와 접촉을 시켜줘야 한다. 빈방으로 가져가 따뜻한 바닥에 두고, 주위를 겨울용 침낭으로 감싸준다. 겨울 캠핑을 위해 사 둔 80만 원짜리 다운침낭을 이렇게 써먹는다. 잘 익어라 하고 불 끄고 나왔다. 이젠 뭐, 곰팡이와 효모의 시간이다.


잠자기 전 살짝 문을 열고 엿보니 어슴프레 예의 그 향이 느껴진다. 시작했구나. 부디 끝가지 제 각각 할 일 다 하기를 바랐다. 나도 곰팡이도 효모도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술 안부부터 챙긴다. 거실에서 이미 향이 느껴진다. 자식이 하는 평생 효도는 갓난쟁이를 벗어나 아장아장 걷고 오 몰 오 몰 먹고 어눌하면서도 조잘조잘 말할 무렵에 다 한다고 했다. 술도 저런 향을 맡게 해 주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저 향을 딱 집어내서 방향제로 만들어 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방문을 열고 조심스레 침낭과 키친타월을 걷어낸다. 유튜브에서 자주 보던 모양새다. 기포도 뽀글뽀글 올라온다. 알코올에 소독한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휘휘 저어준다. 향이 더 짙게 풍긴다. 다시 뚜껑을 덮고 침낭으로 감싸준다. 숟가락을 입에 넣고 맛을 본다. 달찍한 맛이 느껴진다. 시작은 잘 된 모양이다. 근데, 초기에는 젖산이 나와서 잡균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는데 신맛이 느껴지진 않는다.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문을 닫고 나왔다.


곰팡이와 효모의 시간, 막걸리 빚기 2일 차 ~ 4일 차


목요일 저녁에 처음 발효를 시작했고, 금요일과 토요일은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저어줬다. 알코올에 소독한 수저를 사용했다. 3일 차인 토요일까지는 과일향에 가까운 달큰한 향이 계속 됐으나, 4일 차인 일요일엔 달큰한 향보다는 막걸리 특유의 텁텁한 향이 섞여 났다. 하루 두 번 저어주던 것을 오후에 한 번 저어주는 것으로 끝냈고, 키친타월 뚜껑 위에 원래의 뚜껑을 올려뒀다. 공기와 차단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로 될지는 두고 봐야겠다. (아직 발효과정에서 밀폐를 해야 하는 건지, 면포 등으로 먼지만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3일 차까지는 아직 밥알의 대부분이 뜬 상태로 있다가, 4일 차부터 일부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투명한 황색빛의 액체가 고이고 있다. 밥알이 모두 가라앉길 기다려 술을 거르면 될 테지만, 발효의 성과에 따라 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맛을 봐가며 신 맛이 조금 느껴질 때쯤 걸러야겠다.


막상 술을 담그고 보니 몇 가지 놓친 부분들이 있었다. 바닥 온기가 용기에 직접 전달되지 않도록 둘 사이를 좀 띄워 둬야 한다는 것, 술을 저어주고 나면 오염 방지를 위해 용기 표면에 묻은 것은 잘 닦아주어야 한다는 것, 밀폐 여부와 방식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한다는 것, 소독과 청결은 지나칠 정도로 해야 한다는 것, 지금 만들고 있는 단양주보다 이양주 혹은 삼양주가 실패의 확률이 적다는 것, 누룩을 가급적 잘게 부숴 두는 것이 작업에 쉽다는 것 등등. 역시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는 노릇이다. 유튜브에 있는 다양한 막걸리 빚기를 시도해 보고 내게 가장 적당한 방법을 찾아야 하리라.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술을 다 뭐 하지 하는 고민도 들었다.


곰팡이와 효모의 시간, 막걸리 빚기 5일 차


퇴근 후 소주잔 반 잔 정도 따라내어 맛을 봤다. 약간 시큼하고 텁텁한 맛이 났다. 판매용 막걸리의 단 맛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역하거나 기분 나쁜 맛이 아니다. 아니, 제법 맛이 좋다. 알코올 도수도 생각보다 높은 모양이다. 술기운이 가슴속에서 느껴진다. 밥알이 꽤 가라앉았지만, 깊이 가라앉진 않았고, 덕분에 위에 고인 술 량도 아직은 미미하긴 하다. 맛을 보아서는 내일 정도에는 술을 걸러야겠지 싶다. 삼베 주머니를 사야 하나 고민했는데, 주방 찬장 깊숙한 곳에 중간크기 한 장, 보다 큰 것 한 장이 있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끓은 물에 넣어 소독하고 냄새를 제거했다.


곰팡이와 효모의 시간, 막걸리 빚기 6일 차


아침에 일어나 맛본 결과, 어제저녁보다 더 강한 알코올 맛이 느껴진다. 진짜 이제 다 된 것 같다. 퇴근하고 바로 걸러주기로 한다. 살짝 기분이 좋아진다. 성공에 거의 닿은 것 같다.


막걸리 빚기 8일 차


드디어 술을 거른다. 밥알은 밑으로 가라앉고, 황갈색 액체 상당량이 위로 고여있는 상태다. 생각보다 밥알이 잘 삭지는 않은 것 같지만, 더 늦추면 안될 것 같다. 기포가 올라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발효는 끝난 듯하다. 어젯밤 준비해 둔 삼베 주머니를 꺼냈다. 작은 대야 역시 알코올로 소독해 둔다. 용기 속 내용물을 주머니에 넣고, 또 물을 약 1리터 정도 타서 조물조물한다. 우윳빛 술이 대야에 담겼다. 더 이상 짤 수 없을 정도로 꼭 짜주고 주머니를 치웠다. 소주잔으로 한 잔 떠서 맛을 본다.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약간 시큼하면서도 텁텁한 예의 그런 술맛이 난다. 750 리미리터 짜라 병 두 개에 나눠 담그고, 냉장고에 넣는다. 이제 숙성의 시간이다. 근데 다시 컵으로 한 잔을 따라 마셨다. 그냥 텁텁한 막걸리 맛이다. 이 맛을 내가 바란 건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술 빚기에 실패하지는 않았구나 느낌이 온다. 술이다. 혀 끝에 느껴지는 알코올 맛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배 속에 들어가니 저기 아래 창자쯤부터 지르르 술기운이 퍼졌다. 술빚기를 다시 시도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철 취미로 참 좋을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그 맛을 찾기 위한 여정을 지속하기로 한다. 생각만으로도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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